백선엽 이어 이승만·트루먼 동상까지···다부동, ‘보수의 성지’ 되나
친일 행적이 있는 백선엽 장군에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까지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에 건립된 유일한 전쟁기념관이 보수정당의 정치적 장소로 활용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17일 경북도와 칠곡군에 따르면 2017년 제작된 두 동상은 민간단체인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지난 6월 16일 새벽 경기 파주에서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 세웠다. 서울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마저도 영내 설치를 거부하면서 갈 곳을 잃었던 두 동상이 7년 만에 호국영령이 잠든 다부동에 기습 설치된 셈이다.
경북도는 당초 지난 5일 열린 백 장군 동상 제막식 때 두 동상의 공개를 검토했지만 정치적 갈등을 우려해 연기했다. 그러나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당시 이 자리에서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트루먼 동상을 세워놨는데 왜 이런 어른들이 갈 데가 없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도 자유 대한민국이 옳게 안 된 것”이라며 오는 27일 두 동상의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두 동상의 제막식 여부가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두 동상이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지게 되면서 호국영령이 잠든 기념관이 정치적 장소로 변질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찾아 추모해야 할 공간이 특정 보수정당의 선전 무대가 될 것이란 우려다.
실제로 대선후보였던 2021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찾아 자신의 안보 행보를 펼쳤다.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씨(75) 조차 이 같은 이유로 두 동상이 기념관에 세워지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칠곡군 가산면 주민 박모씨(40대)는 “트루먼·이승만은 누군가에게는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인물 아니냐”며 “역사적 장소에 설치된 기념관인 만큼 여야 모두가 찾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 모두 한국전쟁 과오에 책임이 있어 동상까지 설치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21년 경북도가 두 동상의 설치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광복회 경북지회는 트루먼 전 대통령의 경우 극동방위선 보호구역에서 남한을 배제해 김일성이 남침할 구실을 줬다며 동상 설치를 반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전으로 피신할 당시 한강 다리를 끊어 수많은 국민을 수장시킨 잘못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당시 다부동전적기념관 소유권과 관리 권한이 있는 칠곡군청은 지역 이장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찬반이 팽팽히 나뉘자 동상 설치를 포기했다.
그러자 경북도는 내실 있는 관리를 통해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국가 현충 시설로 승격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워 지난해 12월 21일 ‘다부동 전적기념관 이관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칠곡군과 체결해 올해 1월부터 직접 기념관 운영을 맡았다. 이후 6개월 만에 이승만·트루먼 동상을 기념관에 들인 셈이다.
칠곡군 한 관계자는 “백 장군의 경우 다부동 전투와 연관돼 있으니 이해라도 된다”며 “(이승만·트루먼 동상 설치는)사실상 보수 전용 장소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는 “동상 설치와 함께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그 일대에 호국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하는 등 놀이·체험시설을 추가해 특화된 호국보훈 공간으로 만들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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