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우리 아파트가 비싸다며 팔라고 했던 전문가
수년 전 서울 강남권 30평(99㎡) 아파트 분양권을 8억원 초반에 산 친구가 있었다. 주위에서 다들 비싸다고 말린 매물이다. 이후 그와의 모임에 자칭 부동산 전문가라는 A씨가 우연히 합석했는데 강남아파트를 잘 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격이 적어도 2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잔파동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언은 적중했다. 친구는 그를 고수라고 칭하며 이직이나 가족문제 같은 대소사까지 상담하는 절친이 됐다.
3배쯤 가격이 오르자 A씨는 친구에게 집을 팔라고 했다. 일단 집값이 비싸졌고 그 아파트 입지가 지닌 단점도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맞는 얘기였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됐고 내수와 건설경기도 좋지 않아 부동산 전반이 급락할 테니 일단 팔아 현금을 쥐고 있으라고 했다. 친구의 입은 굳었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 모임이 파한 뒤 친구가 나를 따로 불렀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하면서 잘난 척하는 A씨의 태도가 무척이나 불쾌했다고 했다. 그동안 그의 조언 중 틀린 것을 나열하고 A씨가 똑똑한 척하는 데 비해 재산도 많이 모으지 못했다고 곱씹었다. 반대로 A씨는 "가감 없는 팩트로 조언했을 뿐인데 화를 내며 따지고 든다"고 서운해했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오버했을까. 가감 없는 관전평을 묻는다면 친구가 과했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이게 실상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처세 전문가들은 A씨가 잘못했다고 한다. 친한 사이일수록 객관적인 시각과 명확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우정의 의무라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팩폭(팩트폭격)이 심각한 관계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A씨는 이렇게 얘기해야 했다. "네 아파트는 강남 요지니까 빠지더라도 다시 올라갈 거야."
주식시장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개인들에게 압구정 현대아파트급 인기를 끄는 에코프로라는 종목이 있다. 연초 주가 11만원에서 최근 100만원까지 800% 이상 뛰었다. 시가총액 26조원으로 네이버(NAVER), 카카오 수준에 근접했다. 지난 4월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에코프로 주가가 지나치게 과열됐다며 보기드문 '매도' 리포트를 써냈다.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의 1~2년 후 예상실적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적정주가를 산출하는 모델을 주로 쓴다. 실적반영 기간을 늘려도 되지만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런데 에코프로는 주가가 5년 뒤 예상가치를 뛰어넘었고 2030년에도 현재 이상의 성장세를 끌고 간다고 가정해야 지금 주가가 정당화한다는 게 김 연구원의 분석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썼을 뿐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 의견이다. 그(45만원)에 앞서 삼성증권(40만원)은 목표주가를 더 낮췄지만 매도가 아닌 중립의견으로 보고서를 순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매도라는 글자에 격분한 17만 에코프로 주주와 연관기업의 100만 주주는 금융감독원에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는지 확인해달라며 민원을 쏟아냈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네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해서 산 25억원짜리 아파트는 곧 반토막날 수도 있어"라는 말은 충고보다 저주로 들렸을 듯하다. 하지만 "25억원은 1년 뒤 50억원이 돼 있을 테니 빚을 내서 한 채 더 사봐"라는 말은 어떻게 들릴까.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의견은 말 그대로 참고자료일 뿐이다. 이를 해석해 방향을 정하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다. 달콤한 상승의 기대와 쓰디쓴 실패에 대한 경고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 아이에게 달콤한 맛만 접하게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의심과 문제제기가 없는 투자는 100% 실패로 귀결된다.
에코프로 주주들은 바른말을 원할까, 좋은 말을 원할까. 매도 리포트를 활성화하려는 금감원의 생각은 옳다. 다만 개미들에게 전문투자자처럼 주가하락 경고를 쉽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난도가 높다. 차라리 매도·매수의견을 빼고 적정주가만 쓰도록 하면 어떨까. 투자자를 위한 소신으로 묵묵히 돌팔매질을 감내한 김현수와 다른 매도 애널리스트들을 응원한다.
반준환 증권부장 abc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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