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희생이 만든 배수로…산사태 견딘 경북 영주
이후 방수포 덮어 피해 막아
“복구보다 예방에 초점을”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우리는 아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거나 다름없죠.”
17일 오전 경북 영주시 상망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마을주민 A씨가 주택 위 야산 배수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지난달 30일 빗물에 휩쓸린 토사가 주택을 덮치면서 생후 14개월 된 아기가 매몰돼 숨진 사고가 일어난 곳이다. 당시 상망동에는 173㎜ 비가 내렸다.
이 주택은 참사 당시 지붕과 벽면이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택 뒤 비탈면에는 산사태를 막기 위해 쌓은 모래주머니도 그대로였다. 사고 원인이 됐던 야산 위쪽에는 방수포가 덮여 있었는데, A씨는 이 방수포에 떨어진 빗물이 장마를 대비해 만들어둔 배수로를 따라 마을 밖으로 흘러나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배수로 덕분에 추가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셈이다.
A씨는 “(영아 매몰 사고 이후) 장마가 오기 전에 예방 공사를 해달라고 주민들이 많은 민원을 넣었다”면서 “닷새가 지나자 굴착기 한 대로 대충 땅을 파 배수로를 만들어주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건(영아 사망)이 없었으면 공사라도 해줬겠나. 마을주민 모두가 아기에게 목숨을 빚진 기분”이라고 했다. 영주시가 이 공사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200만원이다.
전국 각지에서 집중호우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재난을 대비한 선제적 예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변화 등으로 지역별로 짧은 시간 강하게 내리는 국지성 호우가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예천·영주·봉화·문경 지역에서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곳에서 산사태·급경사지와 관련한 선제적 안전 공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재 사고가 난 지역에 별다른 보강 공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부분 산골 지역이라 (접근이 힘든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지는 만큼 예방 대책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재난관리가 예방 중심이 아닌 피해 복구 중심이라고 했다. 이 전 교수는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의 30%는 예방에, 70%는 복구에 쓰인다”며 “이와 반대로 선진국은 70%를 예방에 쓰고 30%를 복구에 배정한다. 우리는 너무 복구 위주 대응”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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