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제어, 반도체 산단 전력 대응하느라… 상반기 발표한다던 ‘전력계통 종합대책’ 지연

세종=전준범 기자 2023. 7.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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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 급증→전력 과잉 생산→수급 불균형
블랙아웃 우려 커지자 “상반기 중 대책 발표”
그러나 무소식…그 사이 잦아지는 출력제어
주무부처는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 마련 분주
“들쑥날쑥 신재생 에너지 계통 현안 대응도”

정부가 발전 과정에서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올해 상반기 중 ‘전력계통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7월 하순을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실무를 맡은 에너지 당국 공무원들이 신재생 발전 출력 제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확보 등 당면 과제에 치여 전력계통 종합대책 작업 속도를 못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곧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늘고 전력 수요는 줄면서 전력 수급 불균형에 따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리스크가 재부상할 것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의 꾸준한 증가로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국가 전력계통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로드맵 수립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전력계통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서울의 한 주상복합상가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 상반기 중 발표한다더니...조용한 산업통상자원부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에너지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상반기 중 발표하겠다고 했던 전력계통 종합대책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굵직한 현안이 많아 우선 그쪽부터 대응하다 보니 (전력계통 종합대책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며 “하반기 중에는 대책을 완성해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전력계통은 전국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송전·변전·배전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은 급증하는 데 반해 송·변전 설비 보강은 더뎌 전력 수급 불균형 상황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전력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거나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도는 수급 불균형을 계속 방치하면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

블랙아웃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커지자 산업부는 작년 11월 ‘재생에너지·전력계통 전담팀(TF)’을 꾸리고 전력계통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당시 산업부는 “발전 제약, 재생에너지 확대 등 전력 관련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전력망 보강이 필요하지만 사회적 수용성 등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계통 운영의 획기적 개선, 발전사업자의 계통 안정화 기여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관점에서 유연하고 강건한 전력계통 시스템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권 사용량의 25%에 달하는 전력을 필요로 한다. 전력 공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늘자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달 7일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로드맵을 조기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사진은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의 모습. / 뉴스1

◇ 최우선 과제 된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하지만 정부는 예고한 대로 올해 상반기에 전력계통 종합대책을 발표하지 못했다. 당장 대응해야 할 이슈가 자꾸 터져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710만㎡(약 215만 평) 부지에 300조원을 투자해 2042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클러스터에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반도체 제조공장(팹) 5개 등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과 200여 개의 반도체 팹리스·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차례로 들어선다. 산업단지 조성은 2050년쯤 끝날 예정인데, 이때가 되면 클러스터에는 일일 10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이 투입돼야 한다. 이는 현재 수도권 최대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일각에선 “정부가 수도권 사용량의 25%에 달하는 전력을 가져오기 힘들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용인을 비롯한 수도권의 전력 공급 능력이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고,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오려면 송전망 보강이 대규모로 이뤄져야 하는데 주민 설득과 예산 확보가 만만치 않아서다. 삼성전자는 일부 공장 가동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030년까지 우선 0.4GW 규모의 전력이라도 공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의구심이 자꾸 커지자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회의’를 열어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로드맵을 조기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전력 과잉 생산에 따른 출력 제어 조치가 앞으로는 제주도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자주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재생 발전 시설이 육지에서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다. 사진은 국내에 설치된 한 태양광 발전 시설의 모습. / 뉴스1

◇ 신재생 급증에 확산하는 블랙아웃 리스크

여기에 수년 새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서 우리나라 전력계통 여건이 근본적으로 바뀐 점도 정부의 전력계통 종합대책 작업 속도를 더디게 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들어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 발전 설비 보급이 급증하면서 전력 과잉 생산이 잦아졌다. 생산한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송전망이나 남아도는 전력을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부진한 상황에서 발전 설비만 우후죽순 늘어나는 바람에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졌다.

전력 수급 불균형은 잦은 출력 제어로 이어졌다. 출력 제어는 전력 생산량이 수요보다 훨씬 많아 수급 불균형에 따른 블랙아웃이 우려될 때 발전소 출력을 강제로 차단하는 조치다. 그간 출력 제어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많은 제주도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앞으로는 육지에서도 출력 통제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신재생 발전 시설이 제주는 물론 육지에서도 계속 늘고 있어서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9284메가와트(MW)이던 우리나라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는 지난해 2만7962MW로 3배가 됐다. 에너지 당국은 제주에 국한돼 온 전력 과잉 생산 이슈가 내륙으로 본격적으로 옮겨오는 시점을 올해 가을로 보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클러스터 이슈 외에도 봄·가을 단기 계통 운영에 관한 제도 정비, 출력 제어 증가에 따른 신재생 사업자의 행정소송 등 여러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이라며 “전력계통을 둘러싼 여건이 녹록지 않고, 더욱 근본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걸 잘 안다. 종합대책 수립을 서두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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