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맡긴 '선불충전금' 보호하겠다더니…규제강도 줄인 정치권
신탁의무 비중 100→50%로 낮춰
은행 예치 허용으로 사적유용 가능
정무위 거치면서 고객보호 뒷걸음
선불충전 업체가 고객 충전금을 외부 기관에 보관토록 규율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 가이드라인보다 규제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충전금을 분리보관 시 신탁 대신 예치를 허용한 점, 신탁 등의 의무 비중을 100%에서 50% 이상으로 낮춘 점에서다.
고객돈으로 부동산 투자 및 대출 사례도
17일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선불업체는 고객 충전금 전액을 금감원이 정한 안전자산(국채, 은행 예금 등 11종)에 보관해야 한다. 동시에 이를 신탁이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고객 충전금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2020년 관계부처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및 금융위원회의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 후속 조처로 마련됐다. 주요국의 감독 방향에 발맞춘 것이기도 했다. 전금법 개정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규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전금법 개정 작업이 본격화한 것은 이듬해인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가 터지면서다.
문제는 개정안이 정무위를 거치면서 초안은 물론 현행 금감원 가이드라인보다 규제 수위가 약해졌다는 점이다. 개정안 초안(제25조의2)엔 선불업자가 고객 충전금 ‘전액’을 정부가 정하는 금융회사에 ‘신탁’하도록 규정했다. 충전금을 수탁한 금융회사는 이를 안전자산으로 운용해야 한다. 현행 가이드라인과 마찬가지로 선불업체가 충전금을 사용할 여지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정무위를 통과한 개정안엔 선불업자가 고객 충전금의 ‘50% 이상’을 정부가 정하는 금융회사를 통해 ‘신탁이나 예치, 보증보험 가입’의 방법으로 관리하도록 변경됐다. 외부 관리 비중이 전액에서 50% 이상으로 축소됐다. 시행령에서 이 비중을 100%로 규정할 수 있지만 반대로 50%로 남겨둘 수도 있다.
또 외부 관리 방법으로 ‘예치’가 포함됐다. 신탁이나 보증보험 가입 대신 예치만 해도 되는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신탁은 운용권까지 제3기관에 넘겨야 해서 함부로 손을 못대지만, 예치는 당기말까지만 해당 금액을 넣어 놓으면 된다”며 “어느 선불업자가 신탁이나 보증보험에 가입하겠느냐”고 했다.
실제 고속도로 하이패스 선불 충전업체인 SM하이플러스의 경우 고객 충전금 중 752억원을 안전자산이 아닌 부동산 투자 및 계열사 특수관계인에 대출을 해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계열사 대출에 나간 752억원을 제외하더라도 안전자산인 예금과 MMF에 넣은 2069억원도 신탁이나 지급보증보험 가입 처리를 하지 않았다.
SM하이플러스 측은 이에 대해 “해당 대여금이 고객 충전금에서 나간 것인지, 건설이나 레저 등 당사의 부수사업에서 벌어들인 이익에서 취급된 것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SM하이플러스는 2018년 이후 건설, 레저 등 부수사업에 뛰어들면서 회사가 벌어들인 돈과 고객충전금이 뒤섞여 투자금과 대출금이 어느 자금으로 나갔는지 파악조차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 투자사업을 벌이면서 돈에 ‘꼬리표’가 없기 때문에 고객 충전금에서 나갔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다.
당국 “고객 충전금 안전자산에 보관해야”
전금법 개정안과 관련해 선불업계는 업체 규모와 상관없이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소 규모의 한 선불업체 관계자는 “이미 가이드라인 따라 고객충전금 100%를 신탁한 상황인데, 개정안대로라면 이 중 50%만 은행에 예치하면 되니깐 오히려 규제가 완화되는 셈”이라고 했다. 한 영세 선불업체는 “전금법 개정안은 가이드라인에 비해 부담이 작아졌다”며 “50% 비중은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현재 SM하이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79개 선불업체는 100% 고객충전금을 안전자산에 맡겨놓은 상황인데, 법안 개정안이 지금 상태로 통과되면 고객 돈 2조4000억원 중 1조2000억원이 당기 중엔 위험자산에 투자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신탁 등의 비중을 100%에서 50% 이상으로 낮춘 것일 뿐 고객 충전금은 일제히 안전자산에 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 가이드라인에선 모든 충전금을 신탁 등으로 처리해야 해 업체가 별도로 관리할 수 있는 충전금(별도관리예외분)은 없지만, 개정안에선 최대 50%까지 별도관리예외분이 발생한다.
신탁이나 보증보험 가입과 함께 예치를 허용한 것과 관련해선 “선불업체에 분리보관 선택지를 늘려준 것이지 사적 용도로 유용을 허용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며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지진 않았으나 시행령을 통해 안전하게 예치되도록 구체적인 장치를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대웅 (sdw61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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