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장예비심사 ‘거북이 걸음’… 기한 지킨 건 5%뿐
올 들어 기업 공개(IPO) 시장에 온기가 조금씩 돌고 있지만, 상장 첫 관문인 상장예비심사 기간이 과도하게 긴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상 45영업일(약 2개월) 안에 마쳐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올해 이 기한이 지켜진 경우는 5%밖에 안 됐다. 나머지 95% 기업의 심사가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북이 심사’로 상장 일정이 지연되면 상장을 통해 신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이 한국거래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코스피·코스닥에서 예비상장심사 결과를 통보받은 기업 41곳 중 39곳(95%)이 결과를 받는 데 45영업일이 넘게 걸렸다. 기준치의 두 배인 90영업일 넘게 걸린 곳도 26곳(63%)으로 절반이 넘었다. 평균적으로는 약 96영업일이 걸렸다.
거래소 상장 규정상, 거래소는 원칙적으로 심사 신청 접수 후 45영업일 안에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서류 보완이 필요하거나 전문 평가 기관에 평가 의뢰한 경우엔 심사를 연장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론 원칙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5%밖에 안 되고, 예외적으로 길어진 경우가 95%라는 것이다. 작년엔 45영업일을 넘긴 비율이 93%였는데 ‘늑장 심사’ 정도가 더 심해진 것이다.
◇‘상장 1단계’가 최장 9개월 걸려
올해 최장 심사 기간이 걸린 기업은 세포 치료제 개발 업체 에스바이오메딕스로 무려 179영업일 만에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작년 5월에 신청했는데 9개월 만인 올 2월에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이후 공모를 거쳐 지난 5월 상장했다. 상장 절차는 통상 ‘상장예비심사’ ‘증권신고서 제출’ ‘기관 수요예측’ ‘공모 청약’ ‘최종 상장’의 5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1단계인 예비심사에서만 전체 기간의 4분의 3이 소진된 것이다.
현재 상장심사가 진행 중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코스피·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받고 있는 기업 64곳 중 26곳(41%)이 이미 45영업일을 넘겼다. 계류 기간이 가장 긴 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사 이노그리드로 지난 2월부터 5개월(97영업일)째 심사 중이다.
작년 증시 부진으로 움츠러들었던 상장 시장은 올 들어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올 2분기 상장한 기업 수는 34곳으로 전년(21곳)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심사 기간이 늦어져 시장 회복세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투 업계 관계자는 “무턱대고 빨리 상장시키라는 것은 아니지만, 통과든 탈락이든 기한 내에 결정해야지 하세월로 대기 기간만 길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기업들 “거래소 눈치 보느라 말도 못 해”
예비심사가 늦어지면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심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시장에서 각종 루머에 시달리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다. 심사 기간이 5개월 넘게 걸렸던 한 기업 관계자는 “심사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자 소액주주들이 ‘회사에 뭔가 문제가 있냐’고 문의 전화를 해왔다”며 “심사가 길어지면 여러 가지로 고충이 많지만, 심사받고 있는 입장이라 거래소에 말도 제대로 못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한정된 인력으로 기업의 재무적 구조와 기술적 기반 등을 충분히 심사하다 보니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 경우엔 기업 측에서 기술력에 대한 증명을 위해 좀 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거래소가 애초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을 설정해 놓았다고 지적한다. 실제 거래소는 ‘원활한 상장 환경 조성’ 명목으로 지난 2007년 예비심사의 원칙적 기한을 3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했고, 이후 영업일 기준(45일)으로 바꿨는데, 이 기간에 심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거래소가 독점적으로 쥐고 있는 기업의 상장 적격성 판단 권한을 민간에 맡겨 자율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기술력은 점점 전문화, 다양화하는데, 거래소가 이에 대해 모두 판단을 하려니 자연히 심사가 지연되는 것”이라며 “미국처럼 주관 증권사가 상장 적격성을 보증하고, 대신 흥행에 실패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그에 따르는 평판 하락을 감수하는 경쟁 구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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