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최고령 승부사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
“나 스스로 은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바둑판 앞에 앉겠다.” 국내 현역 프로 기사 419명 중 최고령자인 최창원(86) 6단이 ‘종신(終身) 대국’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13일에도 장대 같은 빗줄기를 뚫고 한국기원에 도착, 시니어 기전 예선 대국에 임했다. 올해 승리 없이 3패째를 추가했지만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젊은 후배들과 마주 앉는 것만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최 6단은 돋보기나 보청기, 성인병 약 등을 가까이한 적이 없다. 마흔 살부터 염색한 머리칼을 빼면 모두가 ‘자연산’이다. 무엇이 그를 ‘80대 청년’으로 만들었을까. 50세 되던 해부터 37년째 계속 중인 등산이다.
“요즘도 매일 아침 눈 뜨면 한 시간씩 북한산에 오른다”고 했다. 지리산, 설악산, 소설 ‘남부군’의 배경인 회문산 등 전국 명산을 찾았고 백두대간도 몇 차례 종주했다. 홍익동 기가(棋街) 사람들은 최창원 하면 등산부터 떠올릴 정도가 됐다.
건강한 심신과 변함없는 바둑 사랑이 고령의 그를 대국장으로 이끄는 두 축이다. 70세 이후에도 꾸준히 공식전을 소화해왔다. 지난해엔 총 7국을 두어 값진 1승을 따냈다. 상대방 시간패에 힘입은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국내 최고령 승리 기록을 새로 썼다(84세 9개월).
그는 한 평생 타이틀을 다투는 특급 기사는 아니었다. 도전자로 나선 적도 없다. 대신 타이틀전의 꽃이라고 하는 본선에서 맹활약했다. 64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여덟 기전 본선에 올랐다. “1969년 결혼 후 사업을 펼쳐 10년가량 본격 승부를 떠났던 게 아쉽다”고 했다.
전성 시절 그의 장기(長技)는 끝내기였다. 미세한 바둑으로 끌고 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바둑을 즐겼다. 훗날 끝내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창호가 ‘신산(神算)’이라면 최 6단은 ‘원조 신산’쯤 되는 셈이다. 본인도 “후배들 중 유독 이창호에게 진한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창원은 만 스무살 늦은 나이에 바둑을 배워 단 3년 만에, 그것도 첫 도전 만에 입단한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현역 군인 신분으로 기력도 2~3급에 불과했던 무명 청년의 대반란이었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욕심 없이 두었더니 자꾸만 이기더라. 그때 탈락했으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텐데…. 이런 게 운명인가 싶다.”
인공지능(AI)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대신 바둑의 품격을 훼손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AI 덕에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바둑을 대하는 자세가 예전보다 흐트러졌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기회가 오면 나도 AI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86세 최고령 승부사 최창원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인용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세상 사는 일이 별것 없다. 마음 편히 건강하게 하고 싶은 것 하다 가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까지나 산에도 오르고 대국장에도 나가 젊은이들과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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