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지적(指摘)문화, 두뇌의 퇴화 늦출 수 있다
남들이 잘못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지적받는 사람들이 아주 기분 나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꽤 오래전에 방영됐던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의 영상에서 사회자가 두 어린이에게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는 뭘까요?”라고 하니까 그중 한 어린이가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라는 장면이 나온다. 남들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문화를 간단히 ‘지적(指摘)문화’라고 불러보자. 용어가 개념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해 지적문화가 좀 위축되어 있다. 나는 그 나라들이 일찍이 선진국이 되는 데에 지적문화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축구·테니스·농구 등 여러 운동을 해 왔는데 운동을 할 때 초보자에게 운동의 기본 동작이나 패턴을 가르쳐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가르쳐 준다고 말을 해도 당사자는 내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했다거나 잘난 척을 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미국 유학 시절의 경험담을 하나 이야기해 보자. 하루는 농구 코트에 나가서 모르는 학생들과 농구를 하다 나와 우리 편 학생 둘이서 2 대 1 속공을 하게 됐는데 내가 마지막 패스를 우리 편 학생에게 잘 주어 그가 가볍게 레이업으로 골을 넣었다. 아주 전형적인 쉬운 속공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돌아 나오며 나에게 “왜 바운스 패스를 하지 않았지?”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에도 이와 비슷하게 학생들이 운동할 때 서로에게 지적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선진국엔 과하지 않은 지적문화
예전에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어디서나 줄 서는 모습을 보고 문화 수준의 차이를 실감했다. 줄서기 문화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도 배경적인 문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적문화이다. 미국의 맥도널드에서 누군가 줄을 서지 않고 그냥 주문대로 다가가면 주문을 받고 있던 종업원이 바로 눈을 부라리며 줄을 서라고 소리를 지른다. 즉, 누군가 바로 지적하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국에 머물 때 이야기다. 하루는 자전거 가게에서 새 자전거를 샀다. 그 가게에서 방금 산 자전거를 타고 찻길까지 넓은 인도를 대각선으로 20m 정도 가로질러 가는데 갑자기 어떤 신사가 소리를 지르며 내게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불과 몇초 사이지만 자전거는 찻길로 다녀야 하는데 왜 인도로 다니냐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일본에 머물던 때 이야기도 하나 해 보자. 어느 주말에 한국 유학생들끼리 학교 운동장을 빌려 야구를 하는데, 대여 마감 20분 전쯤에 학생들이 하던 운동을 멈추고 모두 밀대를 들고 나와 운동장 바닥을 미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 직원이 끝까지 쫓아다니며 야단을 치거나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이런저런 자잘한 규정이나 매뉴얼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 예컨대 한 회사의 신입 사원이 복사기 사용에 대한 관행을 잘 몰라 복사물 정리를 이상하게 해 놓으면 바로 다른 직원들이 회사의 관행이나 규정을 가르쳐 준다. 만일 한국인이라면 지적질당했다고 기분 나빠할지 모른다.
내가 경험한 이런 나라들에는 공통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지적문화가 존재하고 그 사회에서는 누구든 허튼짓을 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 같은 것이 있다. 서로가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자기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남들이 지적해 준다면 각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의 올바른 지적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남들이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지적해 준다면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닌 한 나 자신이 못 느끼던 잘못을 고칠 수 있고 자신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왜 기분이 나쁜가? 물론 엉터리 지적이나 과한 지적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적에 귀 기울이면 자기발전 도움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만이 발전을 지속하고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배운 ‘일일삼성(一日三省)’의 정신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왔다. 가능하면 자주 나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해 반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평소에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남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는 청소년 시기에는 자기 발전을 촉진하고 인생의 후반기에는 두뇌의 퇴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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