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극한호우시절

이선정 기자 2023. 7.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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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우시절' 속 남자는 중국 출장길에서 미국 유학시절 마음에 두었던 여자를 만나 비를 맞으며 그때 그 감정에 젖어든다.

황순원 단편소설 '소나기'처럼 영화 속 비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처럼 비는 순수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낭만의 단골 소재로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많이 등장했다.

예년 한 달가량 지속되는 전체 장마 기간 강수량(중부 378㎜, 남부 341㎜)보다 훨씬 많은 비가 일주일 새 쏟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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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우시절’ 속 남자는 중국 출장길에서 미국 유학시절 마음에 두었던 여자를 만나 비를 맞으며 그때 그 감정에 젖어든다. 황순원 단편소설 ‘소나기’처럼 영화 속 비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처럼 비는 순수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낭만의 단골 소재로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비는 로맨틱이 아닌 공포의 상징물이 된 것 같다. 우리가 ‘극한호우시절’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이어진 폭우로 전국이 물난리를 겪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 결과 지난 9~17일 집중호우로 인한 전국 사망자는 40명, 실종자는 9명이다.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를 재연한 듯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차량 침수사고 피해는 현재 사망자만 13명이나 나올 정도로 처참하다. 9일부터 17일 오전 10시까지 누적 강수량이 600㎜가 넘은 곳(충남 공주·청양)도 있다. 예년 한 달가량 지속되는 전체 장마 기간 강수량(중부 378㎜, 남부 341㎜)보다 훨씬 많은 비가 일주일 새 쏟아진 셈이다.

올해는 4년 만에 재개된 엘니뇨로 한국 등에 폭염과 폭우가 이미 예고됐다. 작년 서울은 물론 올초 미국 서부와 뉴질랜드 등에 폭우를 내린 ‘대기의 강’(다량의 수증기가 강처럼 좁고 긴 띠 모양으로 움직이며 많은 비를 뿌림) 현상이 현재 한반도에서 뚜렷하게 포착됐다. 이 같은 폭우는 재난알림 표현도 ‘집중호우’에서 ‘극한호우’로 바꾸었다. 기상청은 지난 11일 서울 동작·영등포·구로구 일대에 극한호우 문자를 보냈다. 극한호우란 1시간에 50㎜와 3시간에 90㎜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가 내린 때를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점차 높아지고, 엘니뇨가 가세해 ‘펄펄 끓는’ 바닷물이 수증기 폭탄을 만들어내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이 폭우와 폭염에 시달린다. 지난 3~5일 세계 평균기온은 17도를 넘으며 사흘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같은 극단적 기상현상이 끝이 아닌 ‘서막’이란 점에서 기후변화는 더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미국 방송 CNN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로 기상이변 가능성이 커지면서 동아시아 전역에서 폭우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다”는 과학자의 경고를 전했다. “세계가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 카를로 부온템포 국장의 지적은 놀랍다 못해 섬뜩하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재앙이 될 ‘이상기후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대비를 해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강조한다. 배수인프라 확충 등 사회체계 전반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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