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동학대, 안타까운 죽음 막기 위해 나서야
최근 아동학대 신고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 아동학대 민감성이 상당히 높아진 덕이다. 그만큼 더 큰 학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증가한 셈이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최근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2020년 10월 국가는 아동학대 대응체계 전면 개편을 알렸고,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공공화했다.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공공화란, 아동학대 대응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아동학대의 발굴·조사 업무를 공무원이 직접 맡는 것을 말한다.
이제 각 시·군·구에는 아동학대 조사전담 부서가 생겨났으며 신고 후 72시간 내에, 밤이라 해도 공무원은 현장으로 출동한다.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는 아동학대의 발굴, 조사라는 가장 힘든 업무에 최고 권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건강검진이 많은 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열어 주었듯 이제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는 많은 피해 아동에게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의 빗장을 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례 관리의 인프라 확충이 다음 과제라고 말한다.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대 가정의 회복을 지원하는 일이다. 대부분 아동학대는 부모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부모교육 및 양육기술 상담, 맞춤형 사례관리를 실시하여 원가정의 회복을 돕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잠깐, 많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왜 아동학대 범죄자를 위해 국민 혈세를 써야 하나요? 그냥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언론을 통해 접한 아동학대 사례가 대부분 잔인하고 흉포하다 보니 학대 부모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를 쉽게 연상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동학대 사안을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바로잡으려 훈계하는 과정에서, 혹은 생활고에 떠밀려서, 때론 순간적인 분을 못 이겨서, 자녀 양육에 대한 잘못된 지식 때문에 우발적으로 학대가 일어나는 경우가 상당하다.
물론 2022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정인이 사건의 경우, 그 부모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우발적 실수를 범한 부모에게 같은 해법을 적용하기는 곤란하다. 이들에게는 아동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차근차근 교육하면서 재학대 발생을 야기하는 위험요인을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발견된 질병에 대해 그 특성과 중증도에 따라 차별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치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다. 조사업무가 공공화되면서 조사와 후속관리까지 힘겹게 책임지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제 온전히 피해 아동과 가정의 회복을 지원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재학대 예방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종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복지법 제45조에 따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시·군·구별로 1곳 이상 설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산의 경우 16곳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 3곳만 설치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별 사건 수 기준으로 상담원 한 명이 복지부 권고 32케이스를 훌쩍 뛰어넘는 115케이스 내외를 감당해야 한다. 주 40시간 업무시간에 80시간 이상의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들어도 믿기 힘든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아동학대 사례는 재학대의 위험이 매우 높다. 재학대가 반복될 때마다 아동이 치명적인 상해와 사망에 이를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압도적인 업무량에 눌린 종사자들이 재학대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가정마다 맞춤형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지나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피해 아동이 입은 데미지를 치료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있다. 그 비용을 기꺼이 치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 국민의 높은 의식과 목소리가 가장 큰 힘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안타깝게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느꼈던 의로운 분노를 내려놓고 실현 가능한 해법을 실행해 가는 것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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