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빠져나와 막막할텐데”… 윗마을 밥짓는 아랫마을 예천사람들

공주=지명훈 기자 2023. 7.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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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길이라도 모으면 이재민들 보금자리가 빨리 복구되지 않겠습니까."

박 지회장은 "이재민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더라"며 "더 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1만765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여전히 4348명이 체육관과 마을회관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수해를 간발의 차로 피한 이웃들이 이재민들을 돕고 나선 지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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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이재민 4000여명 대피소 생활
의용소방대 등 지역 봉사단체 앞장
‘산사태 직격탄’ 예천 백석리의 情
“따뜻한 밥 드시고 힘내세요” 17일 오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백석경로당에서 아랫마을 주민 이은희 씨(왼쪽)가 밥상 앞에 앉은 윗마을 이재민들을 위해 밥을 뜨고 있다. 예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
“작은 손길이라도 모으면 이재민들 보금자리가 빨리 복구되지 않겠습니까.”

17일 오후 2시경 충남 공주시 옥룡동의 한 주택가. 박형진 특수임무유공자회 공주시지회장은 재해를 입은 집에서 살림살이를 옮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은 13일부터 500mm가 넘는 기록적 폭우가 내려 주택 침수 등으로 이재민 235명이 발생했다. 박 지회장은 “이재민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더라”며 “더 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 “함께 살고 있단 생각에 마음 따뜻해져”

구호물품 준비 분주 같은 날 경기 수원시 권선구 남중부봉사관 구호창고에서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담요, 식품 등이 담긴 이재민 긴급구호세트를 상자에 담고 있다. 수원=뉴시스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1만765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여전히 4348명이 체육관과 마을회관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지자체 등의 노력 외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면서 복구 작업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희망적인 대목이다.

이날 옥룡동 일대에선 특수임무유공자회와 의용소방대 등 노란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300여 명이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봉사자들은 침수 주택을 방문해 흙탕물에 오염된 세탁기 등을 밖으로 꺼냈고, 폐기할 물건들은 트럭에 실으며 종일 구슬땀을 흘렸다. 주민 이의자 씨(80)는 “어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가재도구를 정리해 주면서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고 있다”며 “봉사자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 지역 어린이들이 다니는 공주몬테소리어린이집의 경우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적극 복구에 참여했다. 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재원 목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천사처럼 나타나 내부를 말끔히 치워줬다”며 “지금도 돕고 싶다는 연락이 계속 온다. 함께 살고 있단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 윗마을 위해 매끼 식사 차리는 아랫마을

자원봉사자들 복구 구슬땀 폭우로 침수됐던 충남 공주시 옥룡동의 한 주택에서 이날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공주=뉴시스
수해를 간발의 차로 피한 이웃들이 이재민들을 돕고 나선 지역도 있다.

산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선 피해가 덜했던 산 아래쪽 주민들이 이재민 15명을 위해 매 끼니를 차리고 있다. 이날 오전에도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백석경로당에선 점심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을 전체에 단수 조치가 내려진 데다 음식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아랫마을 주민들은 모아 뒀던 식재료를 십시일반 모으고 소방용수까지 아껴 밥을 짓고 있었다. 배추전과 부추전 등이 담긴 밥상이 차려지자 곳곳에서 “아이고, 고맙구려” 등의 인사가 오갔다.

이재민들을 위해 기른 배추를 가져온 이경조 씨(61)는 “몸만 빠져나와 상황이 어려운 이웃들 마음에 위로가 되고 싶다”고 했고, 감자와 부추 요리를 하던 주민 이은희 씨(61)도 “이럴 때 돕고 사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예천읍에서 매일 왕복 1시간을 들여 오가며 식사 준비를 돕는 권재연 씨(59)는 “저 역시 사과 농사가 망해 큰일이지만 이재민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앞이 캄캄할 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했다. 그릇에 담아둔 틀니마저 물살에 떠내려간 이재민 성귀숙 씨(79)는 이웃 도움을 받아 식사를 마쳤다. 이재민 심옥선 씨(82)는 “이웃이 여럿 세상을 떠나 식욕이 없었는데 매일 차려주는 정성이 고마워 잘 먹고 있다”고 했다.

소상공인들도 정성을 보태는 모습이다. 전북 익산시 동산동의 프랜차이즈 빵집 사장 김시정 씨(47)는 금강 산북천 제방 붕괴 위험으로 대피 중인 용안면 이재민들에게 빵 3000개(450만 원 상당)를 17일 전달했다. 김 씨는 “더 많이 나누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수해 복구를 위한 온라인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기부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가 16일 연 긴급모금 페이지엔 17일 오후까지 2억 원 넘는 성금이 모였고, 네이버 해피빈의 전국재해구호협회 모금함에도 1억1000만 원 넘는 성금이 모였다.

공주=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예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
익산=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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