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계부채비율도 세계 3위… 방치땐 경제성장 저해”
‘빚투’ 등 자산투자 열풍 주요 원인
지난달 주담대 증가폭 3년만에 최대
“자산 불평등 심화 우려” 지적
정부는 현재 가계빚이 “아직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가계의 상환 부담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경제 성장의 기반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가계빚 비율 12년 만에 14위→3위
한은이 17일 발간한 ‘BOK 이슈노트’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0%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았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가계빚의 총량이 지나치게 크다는 뜻이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이 비율이 다른 나라와 달리 계속 상승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은은 “주요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비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어든 반면에 한국과 중국, 태국 등은 계속 증가세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43개국 중 14번째 수준이었지만 2016년 8번째로 올랐고 작년에는 3번째까지 올랐다. 다른 나라들이 고통스러운 긴축으로 가계빚을 줄여 나가는 동안 한국은 시한폭탄을 키우는 역주행을 한 것이다.
한국만 유독 가계빚이 늘어난 배경으로는 ‘영끌’ ‘빚투’로 불리는 자산 투자 열풍이 꼽힌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른 자산 수요 증가 등이 가계빚 증가의 주요 요인”이라며 “가계가 부채를 늘려 온 과정에서 이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규제도 조기에 도입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위험은 제한적이지만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세를 제약하고 자산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며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점진적으로 이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미 불어날 대로 불어난 가계빚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했을 때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39년에야 약 90%에 도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사상 최대
가계부채는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 올해 초에는 다소 소강 상태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집값이 다시 꿈틀거리면서 급증하는 분위기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새 5조9000억 원 늘어난 1062조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증가 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 가계대출은 올해 4월(2조3000억 원) 증가세로 전환한 뒤로 증가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에만 7조 원이 늘었는데 주택 가격이 급등하기 직전인 2020년 2월(7조8000억 원)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대치동 등 재건축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매수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며 “가계부채를 줄이지 못한 채 방치하는 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시한폭탄의 위력만 더 키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기준금리를 4연속 동결한 한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가계빚 총량을 줄이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이 경우 자칫 가계의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한은은 가계빚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에 대비해 추가 금리 인상 카드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금리를 3.5%로 했더니 3개월 동안 가계부채가 늘어났다. 단기적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라면서 “당분간 금리를 내릴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한은의 가계부채 증가 우려에 대해 “통화당국의 어려움과 가계대출의 지나친 팽창 우려에 100% 공감하고 있다”며 미시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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