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63> 동래 고읍성지 나무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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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오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물로 몸을 씻어내고픈 생각이 자주 난다.
발굴조사 당시 우물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때 동래 고읍성 사람들이 사용했을 항아리와 나무 두레박이 들어 있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동래 고읍성 사람들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일까? 부산박물관 고대·중세실에 전시 중인 이 두레박 앞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귀고,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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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오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물로 몸을 씻어내고픈 생각이 자주 난다. 21세기 현대에서 물을 얻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수도꼭지를 틀거나, 정수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지만, 이런 환경이 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옛날 사람들이 물이라는 자원을 얻는 방법은 퍽 한정적이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내리는 비를 이용하거나 하천에 흐르는 물을 떠다 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물을 얻기 쉬운 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으니, 멀리 나일강과 같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도, 공주 석장리와 같은 한반도의 구석기시대 유적도 모두 강가에 위치한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 살며 큰 마을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목축도 하게 되자 당연히도 많은 물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지하로 땅을 파서 지하수를 얻는 방법을 터득했고, 지하수를 괴어놓을 우물을 만들었다. 우물 덕분에 삶의 터전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로 미루어 보면 우물은 청동기시대부터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나무나 흙을 쌓아 만들다 통일신라시대를 즈음해선 돌을 쌓아 만드는 방법이 널리 보급되었다.
부산에서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우물이 여럿 확인되었다. 수영구 망미동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여말선초까지 동래군의 행정 중심지였던 동래 고읍성 터가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 5기의 우물이 조사되었다. 모두 땅을 파고 내부에 돌을 쌓아 만든 석조 형태이다. 발굴조사 당시 우물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때 동래 고읍성 사람들이 사용했을 항아리와 나무 두레박이 들어 있었다.
두레박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 사용한 도구로 오목한 형태다. 동래 고읍성 우물에서 출토된 두레박(국립김해박물관 소장)은 통나무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유기질인 나무는 잔존율이 낮아 출토되는 사례가 적지만, 이 두레박은 우물 속에서 물기가 있는 채로 보존된 덕분에 전체적인 모양이나 제작기법을 알 수 있는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통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고서 바깥면은 전체적으로 각이 지지 않도록 섬세히 다듬었다. 크기는 가로 18cm 세로 16㎝ 깊이는 9㎝ 정도로, 두레박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으로 보인다. 몸통 측면 양쪽에는 사각형 구멍을 뚫어 나무 작대기를 통과시켰다. 이렇게 결구한 작대기는 두레박의 손잡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작대기에서 관찰되는 사용 흔적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우물 안으로 투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동래 고읍성 사람들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일까? 부산박물관 고대·중세실에 전시 중인 이 두레박 앞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귀고,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번 여름, 바다로 계곡으로 몸을 물속에 담그는 휴가도 근사하지만, 우물가에서 물을 뜨는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활기찬 수다 소리를 상상해 보는 힐링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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