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첫 가족여행 가는 날이었는데…”
버스기사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가족들 “9년간 휴가 한번 안써
둘째 결혼 앞 여행 준비했는데”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서원구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시내버스 운전기사 이모 씨(58)의 부인 박모 씨(60)는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된 남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사고) 당일 낮 12시에 퇴근 후 여행을 가기 위해 전날 여행지에서 남편이 신을 가죽 신발도 사고, 먹을 음식도 구입했다”며 “떠나지 못한 가족 여행이 남편과의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됐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 새벽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선 이 씨를 비롯해 침수 사고로 숨진 피해자 시신 5구가 추가로 수습됐다. 침수된 747번 시내버스를 운전했던 이 씨는 퇴근 후 둘째 아들 사돈댁과 다 같이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부인은 “남편은 9년간 버스 운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휴가를 쓴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다”면서 “그랬던 남편이 올 10월에 둘째 아들이 결혼하니까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던 것”이라며 침통해했다.
사고 당일 이 씨는 평소처럼 관절통이 심한 부인을 위해 10분간 안마해주고 출근길에 올랐다고 한다. 가족들은 사고 당일 오전 지하차도 침수 소식을 접한 뒤 이 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다. 부인 박 씨는 “애들 아빠가 평소 다니는 노선을 나도 잘 아는데 저 길이 아니니까 설마 (사고 지하차도에)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이 씨 가족들은 이 씨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부인 박 씨는 “전해 듣기론 남편이 마지막까지 승객들에게 ‘빨리 탈출하라’고 외쳤다고 한다”며 “사고 당일 원래 다니던 도로가 통제됐거나 위험하다고 판단해 우회한 것 같다”면서 울먹였다.
이날 이 씨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직장 동료들은 “이 씨는 오전 6시 첫차 운행을 맡으면 두세 시간 일찍 나와 동료들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다”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료 A 씨는 “모든 동료와 원만하게 잘 지냈고, 봉사 활동도 활발히 해 주위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청주시에서 어르신을 모시고 관광하러 가는 봉사활동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 정리 봉사활동 등에도 앞장서 표창장도 여럿 받았다고 한다.
물 빠진 지하차도 온통 진흙탕… 시신 14구 수습
분당 8t씩 배수… 모습 드러내
구겨진 철판 등 참혹한 현장 생생
공개된 지하차도 입구는 강물과 함께 쓸려온 모래 등이 쌓이며 온통 진흙탕이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장화 발목까지 잠기는 데다 미끌거려 제대로 걷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두운 지하차도에는 소방차와 작업 차량의 불빛만 번쩍거렸다.
지하차도를 가득 채웠던 6만 t의 강물은 80%가량 배수됐다고 했다. 외부에 대용량포 방사시스템 등을 설치하고 만 하루 넘게 분당 8t의 물을 배수한 덕분이었다. 취재진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배수 호스는 꿈틀거리며 끊임없이 흙탕물을 외부로 날랐다.
하지만 지하차도를 100m가량 걸어 들어가니 지하차도 중심부에는 여전히 흙탕물이 가득했다. 해양경찰청 대원들이 들어가니 목까지 찰랑거릴 정도였다. 차량은 보이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구겨진 철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 등은 “흙탕물이 시야와 이동을 막아 구조 작업에 애를 먹었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진이 지하차도를 나온 후 한나절이 더 지난 오후 3시경 소방 관계자는 “드디어 가장 높은 곳 수심이 무릎에 닿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배수도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시신 14구를 수습한 소방 당국은 신원 확인이 완료된만큼 지하차도 수색을 종료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지하차도 폐쇄회로(CC)TV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실종자 여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터널 내부에 있던 차량 17대도 이날 오후 모두 견인됐다.
청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청주=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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