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사선 피폭 앞에 국경은 없다

기자 2023. 7.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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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설비에 문제가 없다는 ‘검사 종료증’을 발급했다. 이로써 오염수 방류의 일본 내 법적 절차는 끝났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해 여름 방류 계획을 몇 차례 공언하고 있지만, 당장 7월 방류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어민 설득에 시간이 필요해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중앙정부의 안전 심사가 끝나면 바로 핵시설을 가동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지자체와 사업자의 ‘원자력 안전 협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1월, 에히메현 이카타 핵발전소의 철근 하역 트럭 전복 사고이다. 부상자도 없고 발전시설과 상관없는 곳에서 발생한 단순 사고였지만, 사고 발생 이후 3시간이 지나서야 지자체에 상황이 전달됐다.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 전력과 에히메현은 ‘정상 상태가 아닌 모든 상황’을 ‘즉각 통보’하기로 협정을 맺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렇게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중대 사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결국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 전력 회장, 사장 등 임원들이 임금을 자진 반납하고 공개 사과와 86명의 임직원 징계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일본이 인접 국가들에 ‘국제적 민폐’를 끼치고 있지만, 문서와 약속을 중요시하는 일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염수 방류의 경우에도 2015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어민협동조합연합회와 ‘어민 등 관계자의 이해 없이 처분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문서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연립여당인 공명당 대표의 “오염수 방류 시기는 해수욕 시즌을 피했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이나 9월과 10월에 예정된 도호쿠 지방선거도 오염수 방류 시기를 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천일염 품귀 사태와 야당 정치인들의 단식농성, 일본 현지 방문과 집회 등 한층 고조되던 후쿠시마 오염수 국면이 다소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국면에서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핵산업계의 ‘오랜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해법이 나와야 한다. 핵폐기물 해양 투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옛 소련은 울릉도 근해를 비롯한 동해에 핵잠수함 원자로와 사용후핵연료 등 핵폐기물을 무단 투기했다. 이 내용은 1993년 러시아의 ‘백서’를 통해 알려졌고, 당시 일본 정부는 강력 반발하며 외교채널을 가동했다. 그 결과 1993년 런던협약 제16차 당사국총회에서 ‘핵폐기물 해양투기 전면 금지’ 결의안이 채택됐고, 이 흐름은 준설물 등 7개 폐기물을 제외한 모든 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는 ‘런던협약 개정의정서’ 채택까지 이어졌다. 안타깝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런던협약 가입을 미루고 있다가 동해 핵폐기물 투기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가입을 추진했으나, 가입신청서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해 결의문이 채택된 런던협약 당사국 총회에는 참가하지도 못했다.

30년이 지난 후쿠시마 오염수 국면에서도 답답함은 계속된다. 국내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앞장세우며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들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제사회에서 외교력을 발휘하거나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30년 전 동해 핵폐기물 투기 사건을 계기로 핵폐기물을 ‘투기(dumping)’하는 것은 명확히 금지돼 있지만, 이번 오염수 문제처럼 파이프라인을 통해 방류하는 것이 투기 행위인지는 애매한 상황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 법적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국제 협약 개정 없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당장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다 할지라도 이를 막을 시간적 여유는 있다. 일본 정부는 30년에 걸쳐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차를 막지 못해도 2차, 3차 방류를 막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진심으로 오염수 방류를 막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국제 협약을 개정하는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30년 전 일본 정부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액체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핵산업계의 오랜 관행에 맞서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다섯 군데 핵발전소 부지에서 삼중수소를 비롯한 액체 핵폐기물을 계속 방류하고 있다. 일제 핵폐기물은 위험하고, 국산은 괜찮은가? 핵폐기물의 제조국은 중요하지 않다. 방사선 피폭 앞에 국경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일본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지구상에 핵폐기물을 계속 버려온 핵산업계와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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