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4] 인구 절벽과 실험실의 미래
인구 절벽 시대로 들어서면서, 2020년부터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괜찮았지만, 내년부터는 대학원 입학생 역시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낸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 중반에는 석박사 학생이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고, 수도권 대학과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20곳 정도를 제외한 모든 대학의 석·박사과정 입학생이 한 명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원생이 거의 없어지면 실험실에서 나오는 논문이 급감하며, 연구비를 받아 실험실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실험과 실습 조교가 없으면 학부 교육도 삐걱거린다. 실험실과 대학원생이 없는 대학의 교수직은 이공계 인재에게 매력적인 직장이 되기 어렵고, 따라서 해외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우수 인력이 귀국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 21세기형 두뇌 유출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정부 출연 연구소 인력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인구 감소에 백약이 무효하듯, 대학원생 감소를 만회할 방법도 마땅찮다. 대학원생은 예비 연구자이고 ‘양’보다 ‘질’이 관건이기 때문에, 양적 지원책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지원해도 지역 대학의 반도체 학과는 미달이다. 외국인 학생이나 여학생을 늘리는 정책도 한국의 사회 문화적 조건을 고려하면 한계가 분명하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교수는 혼자서도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정부 기관은 이런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설비와 학생들을 잘 갖춘 실험실이 더 개방적으로 되어 대학원생이 없는 교수들을 초빙해서 함께 연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핵심은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논문, 더 많은 인건비에 승부를 걸던 과학기술 지원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양적인 성장에 익숙한 정책 입안자나 예산 담당자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양적 성장을 포기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한국 과학기술의 활로일 수 있다. 많은 연구자가 갈망하던 ‘양이 아닌 질을 평가하자’는 구호가 실현될 수도 있다. 위기가 한편으로 기회라면, 이런 방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는 것이 인구 절벽의 위기를 진정 기회로 만드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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