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작품으로 마지막을 꽉 채운… 日 대표 미술관의 20주년
미술관이 거대한 교실로 변신했다. 이우환, 아이웨이웨이, 요셉 보이스 같은 현대 미술 거장들이 교사가 됐고, 작가의 필적이 남은 칠판이 작품으로 등장했다.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세계의 교실: 현대 미술의 국어·산수·이과·사회’ 특별전이다. 전 세계 현대미술가 54명의 작품 150여 점을 국어·사회·철학·산수·이과·음악·체육·종합 등 8개 과목으로 나눠 소개한다. 미술관은 “작품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만나고 배우는 미술관이야말로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교실”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 한국의 이우환·양혜규·구민자, 중국 반체제 작가인 아이웨이웨이, 일본의 사진 거장 스기모토 히로시, 화가 요시토모 나라 등이 총출동했다. 1800㎡가 넘는 전시 공간을 활용했고, 출품작 중 절반 이상이 모리미술관 소장품이다.
◇이우환은 철학, 아이웨이웨이는 사회...
첫 섹션 ‘국어’는 말이나 언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 작가 왕칭쑹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초대형 칠판에 중국어, 영어 문장을 빼곡히 적었고, 나이키·맥도널드·벤츠 같은 기업 로고를 그렸다. 제목 ‘팔로 미’는 중국에서 1982년 방영되기 시작한 TV 영어교육 프로그램 제목. 중앙에서 칠판을 가리키며 강사로 나선 이는 작가 자신이다.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중국 사회를 풍자했다.
실제 칠판도 ‘사회’ 영역에 등장했다. 1984년 요셉 보이스가 도쿄예술대 학생들에게 개념 미술 이론을 강의하며 쓴 칠판이 고스란히 작품이 됐다. 기원전 20년 한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박살 내는 아이웨이웨이의 사진은 중국의 문화혁명을 정조준한다. ‘오래된 것을 파괴해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전통을 파괴한 마오쩌둥을 겨냥한 비판의 몸짓이다. 전쟁이나 폭력, 재해가 남긴 것을 마주하는 일본 작가 후지이 히카루, 자신이 먹고 마시고 소비한 흔적을 모두 기록한 한국 작가 구민자의 작품도 흥미롭다.
사물의 존재와 주위와의 관계성을 탐구해온 이우환은 ‘철학’ 코너에 소개됐다. 대표작 ‘관계항’과 간결한 주황색 점이 돋보이는 회화 ‘대화’를 한 공간에 전시했다. 산수(수학)는 의외로 예술과 통하는 학문이다. 일찌감치 수학·과학·해부학·천문학 등의 영역을 횡단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학자로도 알려진 알브레히트 뒤러 같은 화가가 있었다. 전시장엔 피보나치 수열을 네온관으로 나타낸 마리오 메르츠의 작품이 나왔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양혜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 설치미술가 양혜규의 신작이다. 마지막 섹션 ‘종합’에서 별도의 큰 공간을 양혜규의 작품만으로 채웠다. 두 개의 조각이 한 쌍을 이루는 설치 작품 ‘소리나는 하이브리드-이중 에너지’가 전시장을 에워싼 벽지 콜라주와 함께 전시됐다.
거꾸로 뒤집힌 원전 냉각탑을 연상시키는 조각, 날씨 기호와 기후 관련 이미지를 화사한 색감으로 구성한 벽지는 에너지 문제와 기후 변화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담았다. 미술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첫손에 꼽히는 양혜규가 20주년 특별전의 대미를 빛내주길 바랐다”며 “마미 가타오카 관장이 신작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한 과목에 속하지 않고 폭넓은 영역을 횡단하는 작품이라 ‘종합’으로 분류됐다. 9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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