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의 세 가지 층위
방류를 코앞에 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논란은 단순히 국민 안전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최소한 세 가지의 층위가 있고, 이것들이 서로 엮이면서 실익 없는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 첫 번째 층위는 과학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지만 나머지 두 층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과학적 답은 거의 나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답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결론을 바꿀 만큼 논란이 큰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방류가 바다나 인접 국가에 미치는 위험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는 것이다. 위험이 ‘제로’라는 뜻은 아니다. 과학적 예측이 100% 혹은 0%라는 답을 주는 경우는 원래부터 거의 없다. 따라서 통상적인 과학적 의사결정 방식에 따르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은 위험은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과학적인 반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의 작은 가능성이 혹시라도 현실화하였을 때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야당의 주장은 이런 합리적인 과학적 반론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 버렸고, 이것은 그들의 주장에 포함돼 있을 수 있는 합리적 반론까지 비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오염수가 그리 안전하면 일본 국민들이 식수로 쓰라는 반인륜적 주장이라든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기여금 때문에 일본 편을 들었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IAEA에 세 번째로 많은 기여금을 내는 반면 중국은 두 번째로 많이 내는데, 3대 주주 편을 들기 위해 2대 주주 등에 칼을 꽂았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두 번째 층위는 국내 정치다. 민주당이 오염수 논란을 국면 전환용으로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근까지 당대표 사법 리스크에, 전 대표 돈봉투 사건에, 친명 복심 의원의 코인 투기 논란까지 진퇴양난이던 민주당이었는데, 오염수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일단 언론보도에서 이런 사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몇 분의 일로 줄어든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 여길 것이다. 같은 시기 대통령 지지율도 하향세를 보여 잘만 끌고 가면 내년 총선까지 이어갈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섰음 직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혹시 정권 퇴진 촛불집회라도 일어나면 더 좋겠다는 기복(祈福)성 바람도 슬쩍슬쩍 내비친다.
국내 정치에 민감한 것은 정부·여당도 마찬가지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로 출범 석 달 만에 허수아비 정권이 된 경험은 이들에게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결기 같은 걸 심어준 걸로 보인다. 지나간 보수정권의 경험 정도가 아니라 여러 명의 MB맨들이 정권 중심부에 진입해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이 문제에서만 두드러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침묵은 국내 정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이미 끝났음을 시사한다.
세 번째 층위는 국제 정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연달아 참석하는 데에서 보듯이, 신냉전의 국제 정치는 급격하게 재편 중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과 유럽연합(EU), 그리고 나토를 총결집해 중국, 러시아, 북한을 포위하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나토의 동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한국이 이 대열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인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은 부담이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오염수 방류에 대해 강한 반대를 하지 않고 있고, 후쿠시마 오염수가 가장 먼저 캘리포니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은 이미 일본 지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가시적이고 커다란 지정학적 이득을 위해 ‘과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수준의 위험은 받아들이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IAEA 보고서를 존중하겠다고 한 정부·여당은 자칫 친일 프레임에 말려들 위험을 감수하고 지정학적 이익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부담이 정부·여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언론을 검색해봐도 IAEA가 일본 돈을 받아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나라는 한국 야당과 중국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한국 야당에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그러면 북한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합리적인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친중이나 친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도 할 말이 없어지는 셈인데, 이미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세게 질러놓은 말들을 생각하면 그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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