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이승만과 트루먼, 다른 추앙 방식
‘잘못함 - 죄 없는 일본 시민들을 원자폭탄으로 학살했다.’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기념관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트루먼은 잘했나, 혹은 잘못했나?’라는 주제로 의견을 받는 코너였다. 기념관은 관람객이 써낸 글을 그대로 게시하고 있었다. 찬사도 있었지만, 혹독한 비판들이 더 많았다.
기념관이란 업적만 쭉 나열해 놓는 곳 아니었던가. 한국식(?) 사고에 젖어 있던 나는 지난해 방문한 이곳에서 충격을 받았다. 기념관의 취지는 이랬다. “트루먼의 삶은 계속 대화를 불러일으키는 많은 중요한 이슈와 관련이 있다.” 공과가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트루먼은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최종 승인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참전을 신속하게 결정해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기념관에는 한국전쟁 관련 전시물도 많았다. 관람 통로 한가운데 ‘퍼플 하트’ 훈장이 눈에 띄었다. 손편지도 함께 놓여 있었다. “당신(트루먼)은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목숨을 잃은 데 직접적 책임이 있는 만큼, 이 상징물을 전시하여 역사적 업적 중 하나를 기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가장 애석한 점은 당신의 딸은 그곳에 없었기에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당한 일을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53년 5월,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은 윌리엄 배닝이 쓴 편지였다. 그는 아들이 받은 훈장까지 동봉해 트루먼에게 돌려보냈다. 트루먼은 집무실 서랍에 편지를 보관했고, 사후 20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인생의 짐을 고이 보관한 트루먼의 마음에도, 트루먼의 가장 뼈아픈 부분을 보여주는 이런 전시품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기념관에도 경의가 일었다. 굳이 잘못을 들춰봐야 할 만큼 트루먼은 무능한 대통령이었을까. 2021년 미국 비영리방송 ‘시스팬’이 역사학자 142명에게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설문했는데, 트루먼은 44명 중 6위에 올랐다. 트루먼은 원폭 투하를 ‘후회한다’는 서한을 남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트루먼과 같은 시기 대통령직을 수행한 이승만의 기념관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는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아마도 만들어질 이승만 기념관에 보도연맹 학살이나 반민특위 무력화, 3·15 부정선거 관련 전시물은 없을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백선엽의 친일 행적까지도 지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세금까지 들여 기념관을 세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한 인물을 돋보기로 시대적 고민과 그에 맞선 행위를 들여다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적어도 잘못만은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일 테다. 한 인간을 영웅화하고 완전무결의 존재로 추앙하는 일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의 목적을 위해서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구국의 결단’과 ‘위대한 업적’을 전시함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고 오늘날 내 행위도 정당화하는 것이다.
반성과 사과 없는 밀어붙이기식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트루먼이 집무실에 놓아두었다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경구가 윤 대통령의 책상 위에도 놓여 있다고 하는데, 같은 문구인데도 후자의 경우는 왠지 겁이 난다.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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