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임신해도 업소로”… 더 교묘해진 성매매의 그늘

강주영 2023. 7.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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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성매매 의심 업소 점검
춘천길잡이의집 활동가·시민
이틀간 단란주점 등 175곳 점검
일명 ‘보도방’ 통한 성매매 성행
경제 취약계층 여성 개인 고용
성매매 피해 여성 상담 결과
올해 내담자 65.7% 낙태 경험
원치 않는 임신·양육 책임에
다시 업계 뛰어드는 악순환도

“‘성매매’ 대신 ‘성착취’라는 용어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매매 의심 유흥업소 점검 현장에서 만난 성매매피해상담소 춘천길잡이의집의 라태랑 소장의 말이다.

최근 평일 오후 7시 춘천 소양동 일대 골목. 라태랑 소장과 상담원, 길잡이의집을 위탁운영하는 강원여성인권지원공동체 권남희 이사장 등 임원들이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판넬과 주변 상가 리스트를 들고 모였다. 유흥업소 현장점검을 위해서다. 상담원들은 4팀으로 나뉘어 소양동·조운동·효자동·근화동·약사명동·퇴계동·후평동 일대 ‘단란주점’ 혹은 ‘유흥주점’이라고 적혀있거나 ‘유흥업소’로 등록된 업체들을 돌았다. 이틀간 방문한 곳만 175곳이다.

방문한 상가 대부분 화려한 간판과 깜깜한 내부가 대조되는 모습들이었다. 일명 ‘방석집’이라 불리는 유흥업소들이다.

먼저 옛 기생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상가에 라 소장이 밝게 인사하며 들어섰다. 어두운 내부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라 소장은 “점검 나왔어요. 게시물이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려고요”라며 입구 옆 판넬을 가리켰다. ‘성매매와 관련된 채권·채무관계(선불금·사채·이자 등)는 법적으로 무효입니다’라는 문구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등이 써 있었다.

주인은 “요즘 안그래도 손님이 없어 죽겠다. 하루에 1명 받기도 어렵다”면서도 구체적인 손님 수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곳 상근종사자는 1명. ‘유흥업소’로 등록된 업체는 상근종사자 즉 여성접객원을 둘 수 있다.

▲ 강원여성인권지원공동체·춘천길잡이의집의 임원과 상담원들이 춘천 소양로 일대에서 점검업소를 살펴보고 있다.

맞은 편 상가. 30∼4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왔다. 이곳에서 일한 지 3년째라는 이 여성은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거의 없다. 티씨(TC)로 일한다”고 했다. ‘티씨’는 테이블 당 값을 매겨 받는 상업형태다.

또 다른 상가 지하를 따라 내려갔다. ‘단란주점’으로 사업허가증이 붙어 있는 업소가 나왔다. 단란주점은 여성접객원을 법적으로 둘 수 없다. 성매매 처벌법은 성매매 업소임을 알고 임대를 내줄 경우 건물주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곳 점검에 동참한 춘천시민 A씨는 “여성과 함께 드나드는 중년남성들이 자주 목격돼 주변에도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고 했다.

2018년만해도 이 일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만 60∼70명 규모였다. 현재 ‘방석집’으로 불리며 운영되는 일대 상가는 20여곳, 이날 파악한 여성종사자는 10여명으로 줄었다. 라 소장은 “단속이 강화되면서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방석집이 유지되고 있다”며 “보도방을 통해 여성을 제공받아 영업하는 것이 새로운 수법”이라고 했다.

성매매업계 용어인 ‘보도방’은 여성 등을 모집해 유흥업소와 연결하는 성매매 알선을 뜻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점 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무소 등 현황 파악도 쉽지 않다. 시간당 아르바이트 형태로 비용을 지불한다.

최근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이같은 방법을 통해 노래방이나 마사지 업소 등 비유흥업소로 성매매가 유입되고 있다. 춘천길잡이의집이 현장 점검을 통해 파악한 마사지업소는 84곳이지만 정식 업소로 등록되지 않은 30여곳이 더 있다. 여행자나 군장병들이 주요 구매자로 파악된다.

라 소장은 “노래방 여성 도우미는 불법인데 성매매 은폐를 위해 가해남성이 직접 여성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며 “이혼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여성 등을 끌어들여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로 고용해 성 산업을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치밀한 성 산업 구조 속에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 등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올해 춘천길잡이의집을 찾은 내담자 35명 중 23명이 낙태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65.7%가 원치 않는 임신을 경험한 셈이다. 임신할 경우, 업소나 남성 가해자 모두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낙태 후유증,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라 소장은 “업소에서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아빠가 누구인지도 알기 어렵다. 누군지 알더라도 임신사실을 알리면 협박 등 또다른 가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미신고 아동, 아동 방임·유기 등의 범죄 사각지대에 성매매 여성들이 내몰리기도 한다. 양육비를 위해 임신 중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라태랑 소장은 “성 거래 관계에서 남성 가해자가 피임 기구 등 사용을 거부하면 여성들은 임신 위험을 떠안는다”며 “대부분 낙태하지만 아이를 기를 경우 양육비를 위해 다시 성매매를 하는 악순환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어 “업소를 벗어나 새 직장을 구하려해도 저학력 여성이 많아 취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맘 카페에서 중고물품을 얻어 아이를 키우는 등 열악한 양육 환경에 놓이거나 생계형 절도를 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춘천길잡이의집이 올해 춘천시내 175곳(유흥주점 153곳·단란주점 22곳)을 점검한 결과, 상근여성을 둔 업소는 39곳(111명), 보도방 및 개인 아르바이트를 통해 성매매 여성을 동원한 업소는 146곳(보도방 135명·개인아르바이트 11명)으로 집계됐다.

강주영 juoy9642@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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