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 강원특별자치도와 접경지역-연대와 권리찾기 희망

안의호 2023. 7.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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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익 싸움에 대거 희생
접경지 주민들에겐 상흔
‘우리’일에는 간섭 꺼리고
‘내’일 마저 소심한 항의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우리’라는 자기권리 찾기
대한민국 국민 인식시켜야
▲ 안의호 화천주재 부국장

기자생활 30년 중 절반을 접경지역에서 보냈지만 아직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들은 이·삼중의 규제로 자신의 정당한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살지만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하다 보면 정부나 행정, 군부대에 대한 불만을 가슴 밑바닥에 꾹꾹 눌러놓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접경지역에서 향토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 선배에게 물어봤더니 8·15 해방 직후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린 뒤 인공 치하에 살던 접경지역 주민들이 좌우익 싸움 와중에 대거 희생된 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눈앞의 현상 이면에 어떤 복선이 깔려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다가는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접경지역 주민들에겐 상흔처럼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최근 10여년 간 남북관계가 널뛰기를 하듯 요동치는 와중에도 접경지역 주민만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겉모습이 평온했다. 10여년 전 우리 전방부대 대북 확성기를 직접 사격하겠다는 북측의 경고가 있던 날도 인제지역의 한 할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침 일찍 잠자는 손주를 깨워 아침밥을 먹였으며 5년 전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온 나라가 떠들썩 할 때도 철원지역의 한 농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민통선 이북의 농경지로 트럭을 몰았다. 겉으로 평온하다고 정말 평온한 걸까. 접경지역 주민들이 본능적 경고에 몸을 사리며 사는 동안 접경지역은 갈수록 위축되고 이젠 군부대와 관공서의 군인·공무원들이 아니면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기 힘든 기형적 경제구조로 변했다.

2년여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온 접경지역 화천도 겉모습은 예전 철원·양구·인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 주민들도 여전히 ‘내 일’이 아닌 ‘우리 일’에 대해서는 간섭을 꺼리고 ‘내 일’마저도 조심조심 따지는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70년을 화천군민과 함께했던 육군 27사단이 해체됐음에도, 군장병 위수지역 확대(폐지)로 지역 상경기가 고사될 위험에 처했음에도, 군납제 변경으로 지역 농산물의 판로가 막힐 위기임에도… 소심한 ‘나’들만 개별적 작은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작은 목소리는 절실해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일반 국민들에겐 인구감소로 병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는 ‘국방개혁 2030’의 타당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장병의 ‘외출·외박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의 타당성만 두드러져 보인다. 오히려 작은 목소리를 내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불쌍한 군장병들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는 ‘각다귀’로 취급된다.

지난 6월 29일 화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의 ‘찾아가는 강원특별자치도 도민 설명회’에서도 주민들의 이 같은 성향은 그대로 드러났다. 70년 넘게 삶을 옥죄던 각종 규제 철폐와 지역발전 청사진을 주민 손으로 그려볼 수 있는 정말 큰 기회가 왔음에도 참여 주민들은 소박하게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법 조항과 발전 계획에 대해서만 말했다. 향토사학자가 말한 ‘접경지역 주민 DNA’가 또 발현된 것 같았다. 물론 주민들이 한정된 설명회 시간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자제했을 수도 있다.

기자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이런 성향에 대해 답답해 하던 차에 최문순 화천군수가 ‘함께’라는 화두를 던진다. “(접경지역 주민조차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포사격장 소음문제에 대해, 군납문제에 대해, 외출·외박 문제에 대해 각자가 아무리 말해도 국방부(정부)는 듣지 않는다”며 “화천뿐 아니라 철원, 양구, 인제, 고성 주민도 함께 연대해 ‘접경지역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강하게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최 군수의 발언에서 ‘연대’와 ‘자기권리 찾기’의 희망을 본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강원특별자치도가 연대를 기치로 접경지역의 밝은 미래를 이끌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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