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반카르텔 정부의 관료 개혁

황정미 2023. 7. 1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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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집단과 가차없이 싸워라”
집권 2년 차 공직 사회에 주문
솎아내기식 인적 쇄신으론 한계
개혁 대상·명분 설득할 수 있어야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5명을 포함해 신임 차관들에 임명장을 주면서 한 말이다. 집권 2년 차 첫 내각 개편 이후 공직 사회에 던진 대통령의 국정 메시지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자기들끼리 이익을 독점하는 집단(카르텔)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카르텔 정부’라는 모자를 쓰고 신임 차관들에 ‘카르텔과의 전쟁’을 주문한 데는 지금껏 공직 사회가 이권 집단에 단호하게 대응하지도, 그럴 의지도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들”을 솎아내고 인적 쇄신을 통해 관료 집단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라고 내각에 지시한 셈이다.

투표로 선출된 5년 단임 정부와 관료 집단의 갈등은 역대 정권에서 늘 있었다. 윤 대통령 멘토로 알려진 김병준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은 ‘관료 커뮤니티’란 표현을 썼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경험담을 담은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관료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고객집단까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서적 공동체로 이뤄져있는데 이 커뮤니티 힘이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다. 노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역임한 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는 한 특강에서 ‘하위정부’(sub-government)에 빗대었다. “거의 모든 정책분야에 정부 관료부터 재벌, 국회의원, 이익집단들로 연결된 막강한 이익동맹이 형성돼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이권 카르텔’과 다르지 않다.
황정미 편집인
‘관료 커뮤니티’ ‘하위정부’에 밀려 개혁이 실패했다고 여긴 노 정부 인사들은 문재인정부에서 칼을 갈았다. 한 친문 인사는 기자에 “정권 초기에 관료와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각 부처별로 적폐청산을 위한 TF팀이 꾸려지더니 전임 정부 주요 정책을 추진했던 공무원들은 줄줄이 인사 조치되거나 수사 대상에 올랐다. 1년 넘게 적폐 수사가 진행되고 집요한 물갈이가 이뤄졌는데도 관료 사회 변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른 채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들어” “진짜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는 말을 집권 3년 차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고받은 걸 보면 말이다.

관료를 믿지 못한 문 정부는 ‘청와대 정부’를 만들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청와대 인력, 규모를 키웠고 대북외교안보 정책은 물론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규제, 탈원전 등을 주도했다. 윤석열정부의 ‘차관 통치’ 또한 대통령실이 드라이브 거는 국정 과제를 뒷받침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여소야대 국회의 인사청문회 후유증 탓에 장관을 바꾸기 어려운 처지를 감안해도 대대적인 차관 인사는 전례가 드물다. 이에 대해 전직 차관급 인사는 “노루목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차관들은 부처 내 인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인선에 핵심 역할을 한다. 대통령이 신임 차관들에 각별히 당부한 사안도 ‘정확한 인사 평가’다. 실제 부처 내 1급 공무원들에 일괄 사표를 받은 환경부는 국정 기조에 맞춰 후속 인사를 준비 중이고, 대통령이 ‘북한 지원 부서’가 아니라고 못박은 통일부도 장관 교체와 함께 대폭 물갈이를 예고했다. 몇 번의 정권교체기를 겪으면서 이미 재량은 없고 책임만 진다고 학습한 공무원들이 이번에는 바뀔까.

노루목을 찾았다고 노루를 잡는 건 아니다. 노루를 잡을 기술이 있어야 한다. ‘관료 커뮤니티’ 폐해를 지적한 김병준은 언론 인터뷰에서 “관료 집단을 이끌 철학과 단단한 정책 방향, 그들을 설득할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출된 권력이 임기 내 국민에 약속한 개혁을 이루려면 공직 기강을 잡고 관료 집단을 움직여야 한다. 지지부진한 국정 결과에 관료 핑계를 대는 건 권력의 실패일 뿐이다. 대통령 말대로 이권 카르텔과 가차없이 싸우려면 공직 사회가 자신들이 싸워야 할 상대와 목표부터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설득 없이 솎아내기식 인사로는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만 더 키운다는 게 역대 정부의 레거시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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