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 혁신…‘가루쌀’ 먹힐까
밀처럼 손쉽게 가루로 만들어
쌀맥주·쌀식빵 등 다양한 시도
정부, 쌀 생산량 조절 위해 권장
눈치보는 식품업계는 제품 개발
판로 확보 미지수…실효성 의문
밥 짓고 떡 만드는 데 쓰던 쌀이 맥주, 빵, 요구르트 등 다양한 식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변신하는 쌀의 중심에는 정부 주도로 재배 면적을 늘리고 있는 ‘가루쌀’이 있다. 다만 정부는 ‘신의 선물’이라 칭하지만 시장성을 둘러싼 의문도 만만치 않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식품업체가 쌀을 이용한 식품 개발에 한창이다. 이날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이천시, 수제맥주 업체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와 손잡고 만든 ‘임금님표이천쌀맥주’를 출시했다. 일반적인 맥주는 보리를 싹 틔운 맥아를 이용해서 만드는 데 비해, 이 제품은 맥아 비중을 줄이고 쌀을 더했다. 이번 맥주는 쌉싸름한 첫맛과 깔끔한 끝 맛을 지닌 골든에일로, 무르익은 쌀을 닮은 황금색을 띠며 은근한 단맛과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특징이다.
시중에선 쌀맥주는 물론 쌀로 만든 식물성 요구르트, 롤케이크, 식빵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쌀로 만든 치즈까지 출시된 상태다.
가장 두드러진 최신 경향은 신품종인 가루쌀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쌀의 한 종류다. 국내 품종으로는 2019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바로미2’가 있다.
일반 멥쌀은 전분 구조가 치밀하다. 가루로 만들려면 물에 불리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밀가루보다 가공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가루쌀은 전분 구조가 밀과 비슷하게 성글다.
2019년부터 가루쌀로 맥주를 만든 파머스맥주는 지난 3월 대만에 쌀맥주 수출을 시작했다. 5월에는 신세계푸드와 서울대가 ‘국산쌀 활용 기능성 대체유 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현재 농심, 삼양식품, SPC삼립, 해태제과, 풀무원 등도 올해 안에 가루쌀을 활용한 시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업체들이 앞다퉈 가루쌀 제품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정부가 농정 역점사업으로 내건 가루쌀 촉진 정책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가루쌀 산업 육성을 대안으로 내놨다.
일반 벼 재배면적을 가루쌀로 전환해 95%에 달하는 수입 밀 의존도를 낮추고, 만성적인 쌀 과잉 공급 문제까지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쌀 전성시대’를 만들겠다며 쌀가공산업 육성·소비 촉진 정책을 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적 있다.
농업계에선 가루쌀 판로를 찾지 못한다면 정부 지원이 끝날 경우 다시 일반 벼 재배로 돌아갈 농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루쌀은 애초에 가공식품을 위해 가루용으로 재배되는 종류여서 밥을 해먹는 쌀이 아니라는 한계가 분명해서다.
농민단체들은 쌀 공급 과잉의 본질은 외국 쌀 수입에 있다며 가루쌀을 내세운 소비촉진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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