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동의 없이 설치한 CCTV 가린 노조…대법 “정당행위”
회사가 동의 없이 설치한 공장 내 폐쇄회로(CC)TV를 비닐봉지로 가린 노동조합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회사가 시설물 보안 등 정당한 목적으로 CCTV를 설치했더라도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노조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노조 간부 A씨 등 3명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 등은 2015년 11월~2016년 1월 군산시 한 자동차 공장에서 회사가 공장 안팎에 설치한 CCTV 51대에 여러 차례 검정 비닐봉지를 씌워 시설관리 업무 등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CTV 중 32대는 공장 외곽 울타리에, 19대는 공장 내 주요 시설물과 출입구에 설치됐다. 노조는 협의 없이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으나 사측은 시설물 보안과 화재 예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설치를 강행했다. 사측과 몇 차례 협상이 결렬되자 A씨 등은 CCTV 카메라에 검정 비닐봉지를 씌워 가렸다.
1·2심은 A씨 등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회사가 안전 및 시설물 관리 등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으로서 정당방위였다는 노조 측 주장은 수단과 방법 등을 고려하면 타당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사측이 정당한 이유로 설치한 CCTV를 비닐봉지로 가린 행위 자체는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되나, A씨 등의 행위는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정당행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노동자들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CTV 가동을 강행해 A씨 등 의사에 반해 근로 행위나 출퇴근 등 개인정보가 위법하게 수집되는 상황이 현실화한 점에 비춰보면 A씨 등의 행위는 법익균형성과 긴급성 등 정당행위 요건을 갖췄다고 봤다.
대법원은 “직간접적 근로 공간과 출퇴근 장면을 촬영당하는 것은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최근 노동자에게 적용된 업무방해죄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앞서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고공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방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해 11월 노조 간담회 참석을 독려하기 위해 사내 방송실을 점거한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철도시설공단 노조위원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기도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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