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재난 문자는 홍수인데
코로나 때 재난 문자 같지 않은 재난 문자가 많았다. 2020년 3월 9일 하루에만 지자체 11곳이 ‘손 씻기’를 권하는 문자를 발송했고, 6곳은 ‘확진자 없음’ 문자를 보냈다. 그런 문자를 보낸 지자체 공무원이 속사정을 털어놨다. “인근 지자체에선 매일 문자 보내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면피성 문자였다는 것이다.
▶기초 지자체까지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계기는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이었다. 당시 정부의 재난 문자 발송이 10분이나 늦어 논란이 됐다. 이후 정부는 광역지자체(2017년 8월)와 기초지자체(2019년 9월)에 재난 문자 송출 권한을 줬다. 재난 상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에서 먼저 알리게 하자는 취지였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쳐 재난 문자가 급증했다. 2019년 한 해 평균 414건 정도였던 문자 발송이 2020년부터 3년간 연평균 5만4402건으로 131배로 늘었다. 좋은 취지가 재난 문자 홍수 사태를 초래했다.
▶이뿐이 아니다. 2021년 6월 개정된 실종아동법이 시행되면서 실종자 찾는 재난 문자도 등장했다. 취지는 제보 활성화였지만 다른 재난 문자와 섞여 관심을 더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면서 재난 문자가 “양치기 소년” “공해 수준”이란 말이 나왔다. 행안부는 2025년까지 실종 문자만 전담하는 채널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
▶재난 문자 내용도 논란이다. 지난 5월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서울시가 발송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피를 준비하라는 문자에 무엇 때문인지, 어디로 대피하라는 건지 설명이 없어 시민들이 우왕좌왕했다. 행안부는 여러 재난 상황에 대비한 표준문안을 186개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를 그대로 보내 생긴 일이었다. 행안부는 표준문안에 행동 요령까지 담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폭우에도 재난 문자는 별 효용이 없었다. 지난주 후반 재난 문자를 하루 10여 건 이상 받았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정작 재난 문자가 필요했던 충북 오송에선 제때 발송되지 않았다. 재난 문자가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서울시립대 분석에 따르면, 자연재해 관련 긴급 재난 문자를 1회 더 발송하면 피해 복구비가 약 1억원 감소해 비용 대비 편익이 100배라고 한다. 문제는 재난 문자 남발로 국민들 사이에선 재난 문자가 긴급하지 않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데 있다. 아예 일상에 방해된다고 재난 문자 알림 설정을 꺼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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