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위기 못 따라가는 ‘헛껍데기 방재’, 일대 쇄신해야

기자 2023. 7.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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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17일 폭우로 침수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견인된 침수차량을 조사하고 있다. 청주 | 권도현 기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7일 현재 전국에 쏟아진 폭우로 40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 34명이 부상했고, 전국에서 1만여명이 일시 대피했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사망·실종 78명) 이후 12년 만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이다. 침수사고가 일어난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현장에서는 버스 기사 등 4명의 시신이 추가로 확인돼 사망자가 이날까지 13명으로 늘어났다. 행정당국의 재난대응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이 무방비로 변을 당한 것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예고된 재난인데도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군경을 포함한 정부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구조·복구 작업과 피해 지원에 신속히 나서라고 지시했다. 인명 피해를 막고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위험지역의 사전 대피와 출입통제 등 선제적 조치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선제 조치’나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통제’는 재난 예보 때마다 되풀이된 주문이다. 이런 정부 방침이 현장에선 형식적이고 무신경한 대응으로 나타난 탓에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음을 묵과할 수 없다. 재난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할 안전 대책과 매뉴얼을 새로 짜는 일이 급선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허술한 재난대응 시스템을 여실히 드러냈다. 청주시와 흥덕구청은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지하차도 인근 미호천의 홍수 경보와 취약지 주민 대피 등을 통보받았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지하차도 통제가 충북도 관할 업무라는 이유였다. 통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충북도로관리사업소는 폐쇄회로TV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충북도는 미호천교 신설 공사 중인 행정복합도시건설청이 제방을 부실하게 쌓은 게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것에 분노가 치민다. 경찰은 전담 수사팀을 구성하고, 국무조정실은 감찰에 착수했다. 모든 기관을 예외없이 조사해 원인과 책임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해 기상재해가 더 빈번해지고, 강력해졌다. ‘극한 기후’는 이미 일상이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장마도 20여일 만에 평년 장마기간에 쏟아낸 강수량을 넘겼다. 19일까지 ‘많고 강한 비’가 내리다 20·21일 소강상태를 보인 뒤 22일부터 또다시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하니 또 다른 ‘기록적 폭우’가 우려된다. 이런 상황을 등한시하고 예년 수준의 대비책으로 맞선다면 방재에 실패할 것이 뻔하다. 복구사업 위주로 편성돼 있는 재난관리기금을 예방에 더 배분하고 통합적인 재난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재해 대책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고, 극한 기후에 대응할 위기관리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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