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드니프로강의 기적
드니프로강은 러시아 남서부 발다이 구릉지대에서 발원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평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흑해까지 2290㎞를 흘러간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드니프로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강 유역은 비옥한 흑토 지대여서 농업 생산량이 풍부하다. 세계 최대 철광석 매장량을 가진 우크라이나 중공업 지대도 이 강을 따라 형성됐다. 드니프로강이 흐르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모스크바·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구소련 3대 도시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자포리자, 헤르손 등 도시도 드니프로강을 끼고 있다.
드니프로강은 정치의 경계선이자 종교의 경계선이었다. 강 서쪽은 친서방, 동쪽은 친러시아 성향이 강했다. 또 서쪽은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동쪽은 러시아 정교회를 주로 믿었다. 전쟁도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우크라이나·러시아가 대치하고 있다. 드니프로강 하류 카호우카댐이 러시아군 소행으로 폭파돼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때아닌 홍수에 시달렸다. 이 댐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전을 러시아군이 장악하면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가 희망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 ‘드니프로강의 기적’도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2000조원 규모로 예상한다. 한국은 이 중 학교·병원 등 시설 복구, 카호우카댐과 공항 재건 등에서 66조원 사업에 참여할 것을 기대한다.
우크라이나는 전후 회복에 한국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경제발전을 일궈낸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 한국전쟁 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만든 ‘한강의 기적’에 이어 ‘드니프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전쟁의 종식이다. 대통령실이 한국의 재건 사업 수주를 강조하는 것이 전쟁으로 ‘잇속 챙기기’에만 관심 있는 나라로 비칠까 걱정스럽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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