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지성인들의 놀이 '풍류'

유선미 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2023. 7.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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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 궂인 비는 붓듯이 온다. 눈 정(情)에 거룬님을 오늘 밤 서로 만나자 허고 판첩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 중에 제 어이오리. 진실로 오기곳 오량이면 연분(緣分)인가 하노라.'

가곡은 휴전 이후 나라가 안정화되면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에 의해 196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돼 보존·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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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미 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 궂인 비는 붓듯이 온다. 눈 정(情)에 거룬님을 오늘 밤 서로 만나자 허고 판첩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 중에 제 어이오리. 진실로 오기곳 오량이면 연분(緣分)인가 하노라.'

이 노래는 폭우가 내리는 날, 님을 기다리며 가곡 우락선율에 얹어 부르며 연심을 표현한 곡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를 '가곡(歌曲)'이라 하는데, 몇 년 전 서양 성악 전공자로부터 '전통음악에서 왜 가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참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이렇게 '가곡'이 '서양음악어법으로 만들어지고 서양 성악발성으로 부르는 성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식되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가곡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 소양교육을 받는 초·중·고등학교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가곡이 아니라 서양 발성으로 부르는 가곡만 가르치기 때문인 것이다.

가곡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부터 사용해 오던 순수 우리나라 전통성악의 용어다. 가곡은 조선시대 선비들과 예기(藝妓)들이 일정한 노래 틀에 시조를 얹어 소규모 관현악반주에 맞춰 부르던 노래다. 가곡의 노래 틀은 '초수대엽, 이수대엽, 삼수대엽, 롱, 락, 편'의 6곡 체가 있으며, 이 6곡을 중심으로 시조(노랫말)의 이면(裡面)에 따라 일부 선율에 변화를 줘 41곡으로 파생시켜 전승돼 왔다.

조선시대 가곡의 향유자들은 가곡을 통해 벗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놀이를 즐겼다. 놀이방법은 경주 포석정과 가곡의 노랫말인 시조와 선율을 살펴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가곡의 첫 곡인 '초수대엽'은 풍류마루를 준비한 선비가 먼저내고, '이수대엽' 계열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향유자의 마음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술이 한 순배 돌면 '삼수대엽' 계열에서는 남자의 호기를 나타내는 시를 높은 선율에 얹어 표현한다. 따라서 삼수대엽 계열노래에는 여창이 없다. 또 한 순배 돌면 '롱, 락' 계열에서는 향유자들의 사랑, 이별에 관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취흥이 도도해지면 '편'계열의 음악으로 박을 빨리 몰아 흥을 맞추어 주고, 마지막 풍류마루를 끝맺을 때에는 남녀 합창으로 이수대엽의 선율을 한 옥타브 올려 '태평가'라는 시를 얹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멋진 놀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가곡의 향유층이었던 선비들과 예기들은 더 이상 풍류를 즐기기 어려워졌다. 우리나라의 전통가곡은 일부 애호가(愛好家)들에 의해 유지되며 겨우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가곡은 휴전 이후 나라가 안정화되면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에 의해 196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돼 보존·전승되고 있다. 또한 가곡은 오랜 세월 변함없이 명맥을 유지해온 역사·사회·문화·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적인 유산이 됐다.

이제 가곡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단순한 애호가들의 놀이문화를 뛰어 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예술이 됐다. 우리나라 음악문화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이기에, 오늘날 모든 지식인들에게는 이러한 전통가곡을 보존·전승하고 계승·발전시킬 의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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