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숫자 하나만으로 순서 매기는 세상
숫자로 검증되는 사회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많은 이들이 노동소득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불안해한다. 가만히 있으면 남들에게 뒤처질까 봐,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열을 올린다. 각자도생에 나선 사람들은 "로또밖에 답이 없다"며 월급만으론 이 나라에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탄한다.
순자산 10억원이 목표인 사회, 명품가방 두세개와 외제차 정도는 타야 중산층이라 얘기할 수 있는 사회, 돈이나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가 중요한 사회…. 우린 지금 수치로 자산을 점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과 자신이 가진 숫자를 비교하며 우월감에 젖거나 혹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비교에 민감한 한국인의 성향은 현실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인정욕구와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해서다. 사람들은 돈과 자산을 바탕으로 나와 타인을 나누고, 내가 그들보다 우월한지 수시로 확인하려 든다. 여기에 평균 아래의 삶이 용서되지 않는, '최소한 중간은 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우리를 돈을 좇는 사회로 내몰고 있다.
「숫자 사회」는 '믿을 구석이 돈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린 한국의 '숫자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논한다. 국제개발협력·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인 저자가 자산 축적에만 힘을 쏟는 현시대의 모습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무엇 때문에 우리 사회가 돈을 떠받들게 됐는지 살펴본다.
노동의 가치가 떨어진 불신의 사회에서 과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어떻게 해야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지 이야기한다. 불신의 사회에서 신뢰의 사회로, 편협한 삶에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로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돈이나 돈으로 나타나는 유무형의 자산, 이를테면 숫자가 전부인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그렇다면 왜 돈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됐을까. 이 상황을 내 탓으로만 봐야 할까.
저자는 "이런 현상을 개인들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구조이고, 자산을 취득하지 못하면 만회할 기회 없이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구조다." 그러면서 돈 만능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박탈감, 배려와 공존, 불신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방관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돈에 미친 사람들의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2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참을 수 없어 하는지, 숫자 이면에 숨은 생존 투쟁을 분석한다.
3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치 상실과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전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한국형 성공 방정식을 알아본다. 4장에서는 함께 달성해야 할 목표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을 선택지로 제시하며, 건강하지 않은 욕망의 근원적 문제 해결로 신뢰 회복의 필요성을 논한다.
이 책은 현 세태를 비판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강박적 숫자 사회는 우리를 절망으로 밀어 넣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이는 다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다운 삶, 타인다운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다양한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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