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이었던 지하차도…재난 앞에 또 ‘각자도생’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물 차. 사장님 빼! 빼! 차 돌리세요. 물이 차 올라요. 차 돌리셔야 돼요."
7월15일 오전 8시45분.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변 직전 비상등을 켜고 역주행으로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온 한 시민의 다급한 외침. 속절없이 무너진 임시 제방을 넘어 지하차도로 6만t 하천 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치기까지 시민들의 차량 진입을 막아선 것은 또 다른 시민이었다. 수차례 이어진 위험 신호와 경고를 모두 무시한 정부와 행정 당국의 안일한 대응에 이번에도 시민들은 '각자도생'에 내몰렸고, 결과는 참혹했다.
"관할 아니다" 도청-시청-구청 '네 탓 공방'
17일 오후 6시 현재 사망자 13명과 부상자 9명이라는 인명피해를 뒤로 한 채 충북도청과 청주시, 흥덕구청은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에 대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공방'이 거듭될 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것은 이번 참사가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참사 당일인 지난 15일 금강홍수통제소가 미호강 수위 상승으로 미호천교 지점에 대한 '홍수경보'를 발령한 것은 오전 4시10분께다. 미호천교는 궁평2지하차도와 직선거리로 약 600m 가량 떨어져있다. 통제소는 이 같은 사실을 충북도와 청주시, 흥덕구 76개 기관에 통보했다.
이로부터 2시간 뒤 계속되는 폭우로 미호천 범람이 우려되자 통제소는 오전 6시34분께 흥덕구 건설과에 이를 알리며 주민 대피와 통제를 경고했다. 그러나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이후 시와 구청은 구체적인 범람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하차도 통제에 나서지 않은 점에 대해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궁평2지하차도는 지방도에 속한 도로로 충북도 관할이기 때문에 후속 조치 의무가 없었다는 것이다.
홍수통제소 측은 지하차도 주소에 근거해 관할청인 흥덕구에 이를 알린 것이라며, 행정기관 내 후속 전파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청과 시청, 도청은 재난 앞에서도 관할 기관을 따지며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차량 진입 통제는 그 누구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청주시와 구청은 지하차도가 이미 물에 잠기던 오전 8시47분께 주민들에게 긴급 안전 문자를 발송, 하천 범람으로 인한 도로 이용 유의를 당부했다. 그 시각 지하차도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침수로 내부에 갇힌 747번 급행버스 운전기사는 승객들에게 "버스 유리를 깰테니 손님들은 빨리 탈출하시라"는 마지막 안내를 했다고 한다.
참변을 막을 수 있던 순간은 또 있었다. 사고 발생 약 50분 전인 오전 7시51분께 미호강 제방 유실을 우려한 시민이 119 등에 신고했고, 오전 8시3분 현장을 확인한 소방대원들은 "제방 둑이 무너져 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상황실에 전파했다. 상황실을 통해 이런 내용이 청주시로도 전달됐지만, 자체 조치는 물론 도로 관리주체인 충북도청으로도 전파되지 않았다. 재난을 앞에서도 국민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상황실로도 오전 7시58분께 "궁평지하차도 차량 통행을 막아달라"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당시 관할 파출소 직원들은 모두 다른 침수 현장에 출동한 탓에 즉시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던 충북도는 '대응 매뉴얼 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매뉴얼에는 지하차도 중심 부분에 물이 50㎝ 정도 차올라야 교통통제를 하도록 돼 있는데, 제방이 무너지기 전까진 그런 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도로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통제 여부를 결정하는데, 인근 제방이 무너지면서 단시간에 물이 차올라 차량 통제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제방, 주민들은 '위험' 경고했다
지하차도 통제가 없었던 점과 함께 무너진 임시 제방에 대한 관리 부실도 참사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하차도와 약 200m 가량 떨어져 있던 곳에 설치된 임시 제방은 폭우와 미호천 범람으로 상당 부분 유실됐고, 결국 범람한 강물이 지하차도를 삼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지하차도 인근에 임시 제방이 설치된 것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주관으로 미호천교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다.
행복청은 새 교량 양 옆에 가교를 설치해 두고, 가교 사이의 60m 구간에 임시 제방을 만들어 놓고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공사 차량 진출입로 확보 등을 위해 기존 제방을 철거한 뒤 임시로 제방을 쌓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 임시 제방이 기존 제방보다 높이가 낮아 범람에 취약했고, 집중호우 예보가 계속되는 데도 제대로 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 당일에도 모래를 퍼올려 쌓아놓는 등 부실하게 관리됐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행복청 관계자는 "임시제방은 홍수를 대비해 오히려 홍수 수위보다 1m 높게 설치했다'며 "이번에 홍수 수준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천재지변으로 제방이 유실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참사 이후 도로통제와 제방 관리 책임 소재를 놓고 행정기관 간 벌이는 책임공방은 수사를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충북경찰청은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88명 수사관이 참여하는 수사전담팀을 꾸리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국무조정실은 참사 원인 규명 등을 위한 감찰에 돌입했다.
정부는 신속한 수사와 감찰을 공언하고 나섰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수차례 강조했던 '선제적 대응'과 재난 시스템 구축을 통한 국민 생명 보호는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야당은 지난해 폭우와 이태원 참사 이후 이번에도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면서 "대한민국이 물난리로 고통을 겪을 때 대통령은 자리에 없었고 대통령 부인은 명품샵을 거닐었다"며 "이번에도 국가는 없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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