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AI·IoT 방재시스템 없인 후진국형 인재 반복"
이상기후에 행정당국의 안일한 대처까지 겹쳐 발생한 이번 침수 사고를 계기로 사물인터넷(IoT), 디지털 트윈,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첨단 재해방지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낡은 행정 매뉴얼도 과도할 정도까지 대폭 손질해 '인재(人災)'가 반복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수자원 하천분야 전문가인 강준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17일 디지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시간 하천재해 관리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연구위원은 "CCTV 등에서 영상 이미지를 얻어 수위, 유속, 유량, 하천 내 객체 등을 인식하고, 원격제어 장치인 홀로렌즈를 통해 원격으로 하천 수위 상황을 모니터링 해 홍수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번 집중호우는 이상기후와 부실한 방재 매뉴얼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처와 책임 떠넘기기만 없었더라도 17일 현재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없었다. 인근의 미호강이 범람할 수 있다는 경고가 4시간 반 전에 있었음에도 오송 지하차도 차량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버스 노선을 변경하기까지 했다. 땜질식으로 쌓아놓은 임시 제방은 범람과 함께 토사로 바뀌어 지하차도의 배수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재난대응 행정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도, 금강홍수통제소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 경고했지만 실제 조치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공무원들의 한계 때문"이라며 "실무 공무원들이 실제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적고, 관리해야 하는 담당 시설이 너무 많아 이를 일일이 챙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재난관리 시스템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실무 공무원까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 현장 공무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용소방대, 자율방범대처럼 해당 지역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주민을 재난관리 시스템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행정당국이 사고 발생 후 1년 안에는 재발방지용 시설을 완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년 전(부산 동구 초량1 지하차도 침수) 사고 이후 행정안전부에서 안전장치, 차단장치 설치 등의 대책을 강구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며 "(예산 집행의)우선순위가 복지 등 성과를 바로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사업에 밀리면서 후진국적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폭우는 주요 외신도 주목할 만큼 이례적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서울이 115년 만에 가장 큰 폭우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 폭우 대비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난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CNN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폭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현재 재난대응 시스템으로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충청남도 청양에서는 지난 13일부터 단 5일 동안 무려 577㎜의 비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이 1200㎜ 안팎인데 닷새 만에 연 강수량의 절반이 쏟아진 것이다.
최근 사흘 간 집중적으로 내린 폭우로 17일 확인된 사망자만 40명, 실종자는 9명, 대피한 사람은 6255세대, 1만570명에 이른다.우리나라의 안전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상회한다. 통계청이 발행한 '한국인의 안전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손상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 당 50.3명(연령 표준화 사망률, 2019년 기준)으로 38개국 중 12번째였으며, OECD 평균 46.5명보다도 높았다.
특히 자연재난 피해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7월 28일부터 8월 11일까지 쏟아진 집중 호우로 주택 파손과 산사태 등으로 전국에서 3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1조372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박정일·이준기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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