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무효’ 외친 이준 열사 순국 116년…헤이그서 추모식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애쓴 이준 열사의 순국 116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엄수됐습니다.
현지 시각 17일 이준열사기념관에 따르면 이달 14일 열린 추모식에는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 김학재 주벨기에 정무공사, 타카미츠 무라오카 라이덴대 명예교수, 이기항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원장, 송창주 이준열사기념관장 및 현지 교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애쓴 이준 열사의 순국 116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엄수됐습니다.
현지 시각 17일 이준열사기념관에 따르면 이달 14일 열린 추모식에는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 김학재 주벨기에 정무공사, 타카미츠 무라오카 라이덴대 명예교수, 이기항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원장, 송창주 이준열사기념관장 및 현지 교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검사인 이준 열사는 이상설, 이위종 대표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위한 고종 황제 특사로 파견돼 1907년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습니다.
대한제국 대표단 3인은 고종 황제 신임장을 제시하고 회의 참석을 시도했지만, 당시 일본의 방해와 의장국이던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의 냉담과 무관심으로 회의장 입장이 결국 좌절됐습니다.
이에 대표단은 ‘왜 대한제국은 제외하는가’라는 제목의 항의문을 작성해 현지에서 각국 대표를 찾아다니며 직접 전달하는 한편, 불어에 능통한 이위종은 외신기자 클럽에서 ‘한국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회의를 취재하던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실상을 알리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준 열사는 한창 장외 외교투쟁을 벌이던 중 같은 해 7월 14일 당시 머물렀던 ‘드용(De Jong)호텔’에서 순국했습니다.
헤이그 시청 문서보관소 사망자 명부에는 그의 죽음이 ‘의문사’로 기록됐다고 이준아카데미 측은 전했습니다.
이준아카데미는 이 열사가 순국한 장소를 헤이그시로부터 매입해서 1995년 8월 기념관을 세웠습니다. 이에 추모식도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일본인 무라오카 교수는 이날 추모식 특별 연설에서 이달 초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연설을 통해 17∼19세기 자행된 노예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죄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일본 언론에 극히 일부만 보도되는 데 그쳤다는 점에 몹시 실망했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두웠던 과거사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지 모르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며 “이 사실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오송 지하차도 구조자 인터뷰 “차오르는 물에 몸이 떠올라…철제 구조물에 매달려 이동” [오
- ‘남색 셔츠’ 구조자 찾았다…70대 청소노동자들도 희생
- 물에 잠긴 세계문화유산…국가지정문화재 40건 피해
- “우리 소를 구해주세요”…충남 청양·부여 물에 빠진 소 구출 작전 [제보]
- 전국 지하차도 925개…50년 이상 호우 대비는 단 6곳
- [영상] ‘폭우 속 골프’ 홍준표에게 국민 눈높이란?
- [영상] 크림대교 일부 붕괴 통행중단…“새벽 2차례 타격”
- “일본 오염수 걱정 마세요” 정부 광고, 한 달에 10억 원
- 중국 청년 실업률 또 치솟았다…2분기 경제 성적표 ‘기대 이하’
- 아세안 외교무대에 ‘ICBM 찬물’…ARF 의장성명도 ‘北 우려’ 담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