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하삼분지계 속 중국이란 난제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지난 3월 언저리에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거쳐 이달 11~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다섯달의 시간은 ‘신냉전의 시작’이란 새로운 정세 변화 속에서 서구의 대중국 전략이 구체화한 ‘변곡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에 미국,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 나토는 ‘중국과 관계 맺기’란 난제와 관련해 ‘디리스킹’(위험완화)이란 해법을 도출해 냈다. 물론 이 해법이 조지 케넌(1904~2005)이 1946년 ‘긴 전문’(long telegram)에서 제시한 봉쇄정책처럼 긴 생명력을 가진 성공한 ‘대전략’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냉전 종식 이후 국력을 키운 중국이 미국에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기 시작한 시점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시기(2012~2013년)와 겹친다. ‘중국몽’을 부르짖는 시 주석은 미국에 “태평양은 두 대국을 품기에 충분히 크다”며 미·중이 서로 ‘핵심 이익’을 존중하며 윈윈하는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했다. 내 ‘나와바리’(구역)인 대만·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중국이 하려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도발적 선언이었다. 미국은 이를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2015년 미-일 동맹을 ‘지역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했다. 그로 인해 국제정치에서 일본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감과 실망감이 처음 비중 있는 공식 문서로 표현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2월 내놓은 ‘국가안보전략’(NSS)이었다. 이 문서에서 미국은 전후 자신들이 유지해온 중국에 대한 ‘관여 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면서, 중국·러시아가 “미국의 가치나 이해와 상반되는 세계를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2020년 7월 닉슨기념관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감정으로 가득 찬 연설을 쏟아냈다. 이후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언어는 이전보다 정제돼 있었지만, 지향하는 바는 더 극단적이었다. 취임 직후인 2021년 2월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현재 인류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변곡점’ 위에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들은 하나로 뭉쳐 중국·러시아의 도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이 음울한 예언은 1년 뒤 적중했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넉달 뒤인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모인 나토 정상들은 동맹의 전략문서인 ‘전략 개념’을 12년 만에 수정해 러시아를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위협’”, 중국은 “서구의 이익·안보·가치에 대한 ‘도전’”이라 명시했다. 러시아는 ‘위협’, 중국은 ‘도전’이 된 이상 서구는 ‘두개의 전선’에서 두 대국을 동시에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는 현명한 접근일까? ‘두개의 전선’에서 중·러와 맞서는 전략 구도를 회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은 것은 유럽이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3월30일 대중 정책 연설에서 “중국과 디커플(관계단절)은 가능하지 않으며 유럽에 이익이 되지도 않는다”며 “우리는 디리스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 메시지에 적극 반응했다. 그 결과 주요 7개국 정상들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디리스킹’을 공식적인 대중 전략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의 결론도 비슷했다. 나토는 중국에 “건설적으로 관여하는 데 열려 있다”고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건설적인 역할도 요구했다. 이를 헨리 키신저식 ‘천하삼분지계’에 빗대 말한다면, 중국을 중립지대에 묶어두고, 러시아란 ‘위협’을 먼저 제거하는 쪽으로 전략적 방침을 설정한 것이다.
서구의 입장이 이렇게 정해진 이상 디리스킹은 상당 기간 시대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70여년 전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분단을 허용한 뒤 당대의 언론인이었던 민세 안재홍은 “민공(민주진영·공산진영) 쌍방 너무 국제정세에 우원(愚遠)한 편이었고, 사대주의적이었다”며 울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국의 맹반발을 부른 4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처럼 경솔한 발언을 자제하고 국제사회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 중국과 관계 맺기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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