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합실 TV엔 연신 사망자 속보…비통 잠긴 오송역·착잡한 시민들

한병찬 기자 장성희 기자 2023. 7.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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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하차도 지났는데…남의 일 같지 않죠"
전문가들 "충분히 항의했는데도 방치…납득 못해"
17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 장병과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7.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청주=뉴스1) 한병찬 장성희 기자 = "저도 오늘 지하차도를 지났는데…남의 일 같지 않죠"

17일 오후 5시쯤 오송역 대합실에서 만난 최영애씨(62)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씨는 "신경을 썼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무섭죠. 너무 안타깝다"고 말끝을 흐렸다.

사고 발생지인 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와 차로 10분 거리인 오송역은 이날도 슬픔에 잠겨 있었다. 대합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는 연신 "집중호우로 사망자가 40명"이라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뉴스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비통함을 참으려는 듯 손으로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한 여성은 "하이고"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5일 오전 8시40분쯤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궁평2지하차도에 갑자기 물이 들이닥쳐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됐고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9명으로 집계됐다.

지하공간 관련 참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때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인근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넘어와 관리사무실 안내방송에 따라 차량을 이동하려던 주민 7명이 숨졌다. 지난 2020년 7월 부산에서도 지하차도가 침수돼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은 반복되는 지하공간 참변에 불안감을 호소하며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입을 모았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핸드폰과 TV를 번갈아 쳐다보던 조모씨(78)는 "작년에도 포항 지하 주차장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 더 큰 사고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것 같다"며 "버스 안에서 목숨을 잃은 20대 청년도, 70대 노인도 모두 귀한 생명인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50대 중반의 박모씨는 "홍수센터에서 경고를 했고 비가 이 정도 오면 봉쇄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무원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만 했다면 희생자들이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박씨는 "이번 사고는 분명한 '인재'라 더욱 안타깝다"며 "실종자와 사망자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합실에서 대기하던 이모씨(47)는 "지역만 다르지 매년 지하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일상적인 공간인 지하차도와 관련해 "내가 될 수도 있어서 두렵다"고 말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차량 15대가 물에 잠기고 최소 11명이 실종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소방당국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2023.7.1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지하차도나 반지하와 같은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있었다.

청주에 거주하는 엄모씨(28)는 "지난해부터 지하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도시에서 살면서 지하공간을 피할 수 없는데 무섭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지적했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미호강의 강물이 범람한다는 경고를 홍수통제소로부터 통보를 받았다면 이미 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재난이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에 교통 통제, 통행 제한, 대피 명령을 긴급히 내릴 수도 있었다"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규정이 있는데 응급조치권을 내리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고 위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교수는 "이미 지역 주민들이 수차례 제방이 위험하다고 항의를 했음에도 그걸 묵살하고 방치한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다"며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발을 막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후 자체가 집중호우와 같은 형식으로 변했기 때문에 우리 도시가 기후가 변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잇는 극단적인 사항들이 어떤 강도로 어떤 빈도로 있느냐에 대한 부분을 종합적인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니라서 준비가 필요하고 격변하는 기후 상황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도시 방재 체계를 구축하는 건 괴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장한소리 한국외대 교육대학원 상담심리전공 조교수는 "지난해 포항 지하주차장 사고부터 이번 오송 지하차도 사고까지 반복되는 사고의 조건들을 접하며 시민들은 공포감을 학습하게 된다"며 "일상생활에 어떠한 지장을 주는 정도의 불안감을 가진다면 가까운 상담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다 보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잠정 집계된 집중호우 인명 피해자는 모두 83명으로 집계됐다.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23.7.1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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