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조선 때도 물난리 늑장대응은 엄벌
"이 가을에 삼남에 홍수가 났다. 충청도의 문의·회인·청주·단양·영춘·공주 등의 고을은 민가 1000여 호가 떠내려 갔고, 익사한 사람이 수천 명이었으며, 무림사 수백 간이 일시에 물에 잠겨 승려와 속인으로서 죽은 자가 대단히 많았다. 경상도의 거창·대구·밀양 등 고을은 물에 떠내려 간 것이 천 수백여 호였고, 익사자가 또한 1000명을 넘었으며, 거제부에선 눈에놀이(모기와 비슷한 곤충)가 크게 발생했다. 전라도의 무주 등 고을은 물에 떠내려 간 것이 수천 호였고, 익사한 자가 또한 그 수의 반이었다."
조선 경종실록(1723년)에 실린 내용이다. 삼남은 충청도·경상도·전라도다. 당시 남부 전역에 물 난리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중 호우로 입은 인명·재산 피해가 막대하다. 마치 최근 폭우로 빚어진 충남·충북·경북·전북·전남 등지의 피해 상황을 보는 듯하다.
수해 대책 마련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조정은 피해 상황을 파악한 뒤 구제책을 제시했다. 백성을 동원해서 진행하던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이재민들의 세금을 면제했다. 수해 지역에 휼전(이재민 등을 구하기 위해 내리는 식량)을 보내기도 하고, 왕이 내탕전을 내리기도 했다. 내탕전은 임금이 쓰는 돈이다.
대처에 늑장을 부린 관리는 처벌 대상이었다. 세종 13년(1431년) 11월에는 수해 지역의 백성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관직자들을 두고 처벌을 논하는 사례가 나온다.
당시 판의주목사 이상흥 등은 낮은 지대에 사는 백성을 피신시키지 못해 민가가 떠내려가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형조에서는 대처를 못한 관리들을 두고 장 80~90대를 치도록 건의했다. 장형은 죄인을 나무로 만든 굵은 회초리로 볼기를 치는 형벌이다. 60대 정도만 맞으면 초주검이 된다.
예고된 수해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상당히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직에서 파면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최근 전국에 쏟아진 폭우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이날 오전 11시 기준으로 집계한 잠정 피해현황에 따르면 사망자만 40명, 실종자가 9명이다. 부상자는 34명이며, 전국에선 1만여명이 일시 대피했다. 재산상의 피해도 컸다. 농작물은 축구장 2만8000여개에 해당하는 면적이 침수됐으며, 농경지는 180.6㏊가 유실·매몰·파손됐다. 주택은 139동이 물에 잠겼고, 52동은 전·반파됐다.
특히 폭우로 청주미호강 제방이 터져 침수된 오송 지하차도 사고(사망자 13명, 침수차량 16대)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이 사고 전까지 최소 세 차례의 홍수통제관리소와 주민 경고가 있었다. 사고 한 시간 전 궁평 1리 이장을 지낸 장찬교(68)씨는 119에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취지의 신고를 했다고 한다.
119는 이런 사실을 시청에 알렸다고 밝혔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가 터지기 4시간 전 홍수경보를 내린데 이어 1시간 30분 전에는 더 높은 '심각 수위'를 경보했다.
이같은 경고에도 관계기관인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은 제방 근처에 있는 궁평 2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자체들은 '관할 타령'만 하며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무너진 제방을 타고 하천의 물이 쏟아져들어왔다.
교통통제를 조금만 더 빨리 했더라면, 최소한 재난 경보 문자 안내만 제대로 했더라도 무고한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제방공사도 부실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명백한 인재(人災)다. 관할 지자체들의 변명은 더 가관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이 들어와 차량을 통제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 현장은 제방과 가깝고 인근 논밭보다 낮은 지대여서 침수사고가 예견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충북도청 간부 공부원이 침수 참사 현장에서 웃음을 보이는 사진까지 공개됐다. 자신이 근무하는 지자체의 미흡한 대응으로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는 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공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번 주도 전국에서 폭우가 내린다고 한다. 곳곳에 홍수 경보가 내렸다. 관할 자치단체에선 늑장 대응으로 안타까운 '인재'를 재현하지 않길 바란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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