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이 '75도 온수' 뿌려 죽였는데···"살의 없다" 판단한 日 법원 [일본相象]
‘일본相象(상상)’은 이웃나라 일본의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한국과 닮은 사회적 현상·맥락을 짚어보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20대 남성이 동거하던 여자친구의 3세 아들에게 섭씨 75도의 뜨거운 물을 20분간 부어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남성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며 아이를 향한 질투심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언론에 고백했다.
16일 산케이신문·마이니치신문·MBS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오사카지방법원 지난 14일 사카구치 히로토시 판사는 마쓰하라 다쿠미(25)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니무라 아리토군(3)에게 전신화상을 입혀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그는 상해치사죄가 적용됐다.
2021년 8월 오사카부 셋쓰시의 한 아파트에서 니무라군이 화상성 쇼크로 숨졌다. 아이의 시신은 전신 90%에 화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이전 경찰 조사에 따르면 숨진 아이의 엄마이자 마쓰하라의 여자친구였던 여성은 “사건 발생 전에도 마쓰하라가 아이를 때려 멍이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와 교제하던 마쓰하라는 아이를 욕실로 끌고 가 섭씨 60~75도의 뜨거운 물을 샤워기로 20여분간 뿌려댔다. 그는 아이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사과를 하지 않아 혼을 내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피고 측 변호인은 “샤워기 머리는 욕조를 향했다. 아이에게 직사할 의도가 없었다”며 “그러다가 아이가 잘못 건드려 물을 맞게 됐다”고 주장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일 뿐 살해의 고의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도적으로 뜨거운 물을 뿌렸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며 “설령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죽이려 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망의 위험을 인식하고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마쓰하라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징역 18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일시적으로 화가 났다고 해도 죽음의 위험을 인식하면서까지 장시간 물을 끼얹을 만큼 피고에게 살해의 동기가 있었는지 증거만으론 알 수 없다”며 “오히려 그렇게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가 사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범행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수 없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 후 기자를 만난 마쓰하라는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고 돕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사회복귀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오사카지방법원 측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을 거라고 가정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100%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현지 매체 MBS는 “재판부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심한 끝에 피고의 살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학대치사 사건에서 살의를 인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마쓰하라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범행의 동기를 밝히며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범행을 저질렀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이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있는 니무라를 보며 소외감을 느꼈고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면서도 “니무라에게 정말 미안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더 애정을 가지고 돌봐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차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국내에서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첫 사례는 2013년 울산 계모 사건이었다. 이후 2021년 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 일명 ‘정인이법’을 통해 사법 당국이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인 사건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아동학대살해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살인보다 양형기준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최근 12세 의붓아들의 손발을 묶어 반복해서 학대한 끝에 살해한 계모와 친부, 4세 여아를 체중이 7㎏가 되도록 굶긴 친모 등 아동학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아동학대 피해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동학대 신고접수는 5만3932건, 전담공무원 등의 조사를 거쳐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3만7605건으로 전년 대비 각 20% 이상 증가했고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건수는 1만1572건으로 2017년 3320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6월부터 새로운 아동학대 범죄 관련 양형기준을 적용해 아동학대치사죄 권고형량을 최대 징역 22년 6개월로 높였다. 또 양형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던 아동학대살해 범죄에 대해서는 징역형 권고 범위를 신설해 최대 무기징역 이상까지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감경인자 중 ‘훈육 또는 교육 목적으로 범행에 이른 경우’는 제외하고 ‘진지한 반성’은 재판부가 직접 조사해 충분한 심리를 거친 후 그 인정 여부를 판단하도록 제한했다.
기준이 상향되고 감경인자가 제한됐지만 가이드라인이 엄격하게 지켜졌는지는 의문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초범 또는 처벌불원' 등의 이유로 선처를 받는 경우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자유형(징역·금고·구류)을 선고받은 10명 중 약 7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자유형을 선고받은 565명 중 381명(67.4%)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같은 기간 형사공판 사건 전체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57%)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2021년 자료를 보면 아동학대 3만7605건 중 14.7%인 5517건이 ‘재학대’ 사례로 조사됐다. 집행유예를 악용한 재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권 의원은 "죄질이 나빠도 '초범·처벌불원' 등의 이유로 감경되는 비율이 여전하다"며 "재판부의 인식개선 속도가 국민적 공감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반복적·상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재판부가 철저히 조사해 감경 요소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서울 서초갑)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힘을 보탰다. 그는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현행보다 3대 더 강화한 아동복지법 개정법률안을 지난달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아동학대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기피할 경우 처벌 수위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늘어난다.
2021년 복지부 아동학대 처벌강화 전담팀의 한 위원은 “양형이 국민의 법감정과 계속 괴리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고요. 아동학대 범죄 특수성을 반영한 통일적인 양형기준 마련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이후 입법부와 사법부는 범죄 예방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아동학대 사건 처벌에 관한 국민 법감정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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