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0억원 브리지론 성사시킨 법무법인 대륙아주] 실물 담보 제공 어려운 상황…토지 매매 대금 반환 채권이 ‘묘수’
강원 레고랜드 사태가 채권시장을 할퀴고 간 지 어느덧 9개월이 지났으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최근 한국신용평가가 국내 26개 증권사의 업무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PF의 규모가 1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작년 말 국내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0조6000억원으로 1년 전(6조9000억원)과 비교해 53.6% 증가했다. 9개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가운데 절반가량의 만기가 올해 상반기 중 도래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유동성 경색 우려에 많은 금융기관이 지갑을 닫았고 위기에 처한 부동산 사업장도 늘었다.
이처럼 부동산 PF 시장이 움츠러든 가운데, 최근 5100억원 규모의 브리지(bridge)론 계약이 성사됐다. 보통 브리지론 규모가 수백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숫자다. 부동산 PF 대출은 크게 본(本)PF와 브리지론 단계로 나뉘는데, 본PF 시행 전 단기간 자금을 빌리는 것을 브리지론이라고 한다. 브리지론이 제때 조달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전면 백지화되기도 한다.
이번에 5100억원짜리 브리지론을 성사시킨 곳은 중형 증권사인 유안타증권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세브란스병원을 짓는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사업’에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그리고 그 뒤엔 법무법인 대륙아주 인수합병(M&A) 자문팀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법률 자문이 있었다. 강경국(사법연수원 29기), 서경주(변호사시험 8회), 류승호(변호사시험 11회) 변호사가 자문에 참여했다.
이례적 규모 브리지론…‘사업 무산 시 돈 돌려받을 권리’를 담보로
송도국제화복합단지 건립 사업은 인천 송도동 5·7공구 및 11공구 일대 126만㎡(약 38만 평) 부지에 연세대 국제캠퍼스와 송도세브란스병원 등을 짓는 프로젝트다. 지난 2007~2015년 1단계 사업을 통해 국제캠퍼스 등이 들어섰고, 현재는 캠퍼스 인근에 병원과 연세사이언스파크(YSP) 등을 짓는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송도 11공구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3500여 가구를 지어 개발 이익을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사업 시행사는 인천교통공사·인천도시공사가 지분 51%를 가진 특수목적법인(SPC)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송복개발)이다. 송복개발이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인천경제청)으로부터 땅을 사들여 그 위에 병원 등을 짓는 식이다. 이번에 조달된 5100억원은 2단계 사업을 차질 없이 계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이었다. 6월 9일 제3차 브리지론의 만기가 도래한 만큼 본PF로 전환하기 전 한 번 더 자금을 조달해야만 했다. 애초 시행사 송복개발은 올해 4월 전까지 본PF로 전환하고자 했으나 결국 브리지론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6월 초까지 브리지론 조달을 완료해야 했던 만큼 시간이 상당히 촉박했다고 한다.
문제는 송복개발이 대주단에 담보로 제시할 만한 실물 자산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당장 매출을 내지도 못하니 매출 채권(기업이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을 담보로 잡을 수도 없었다. 이에 송복개발은 토지 매매 대금 반환 채권을 담보로 브리지론을 약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송복개발은 앞서 제3차 브리지론을 조달해 토지 매도인인 인천경제청에 토지 대금을 완납했는데, 만에 하나 개발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인천경제청에 ‘이 매매 대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권리가 있었다. 이번 브리지론은 이 청구권 자체를 담보로 삼았다. 쉽게 말해, 향후 사업이 무산돼 토지 매매 계약이 해제된다 하더라도 토지 대금 반환 청구권을 행사해서 매매 대금을 돌려받아 대주단에 다시 돌려주겠다는 의미다. 5100억원은 이자 및 금융 비용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며, 청구권을 담보로 약정한 금액, 즉 사업 무산 시 대주단에 돌려줘야 할 돈은 3670억원이다.
“PF 시장 경색에도 초대형 브리지론 성사에 의의”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세 변호사는 브리지론이 성사되기까지 금융 구조 법률 검토, 대주단 질의 대응, 계약 서류 작성 등 전 과정에 걸쳐 자문에 응했다. 특히 이번 브리지론은 실물을 담보로 한 대출이 아니라 장래 채권을 담보로 건 만큼, 향후 법적 다툼이 발생할 소지도 있기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다.
서 변호사는 “토지 대금 반환 청구권은 확실한 실물 자산을 담보로 건 채권이 아니라, 미래에 계약 해지 등 매매 대금 반환 사유가 발생할 경우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장래 채권”이라며 “흔히 쓰이는 방법도 아니었기에 대주단에서 굉장히 많은 질의를 받았고 철저한 법률 검토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법적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토지 매도인인 인천경제청이 직접 나섰다. “채무를 불이행하면 토지 매매 대금을 대주에게 직접 반환하겠다”는 협약을 대주단과 직접 체결했다고 한다. 인천경제청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기 위해 인천광역시에서 만든 외청이다. 청장은 인천시장이 임명하며 1급 공무원에 상당하는 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보증을 선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그 외에도 대륙아주 자문단은 앞서 1단계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 변호사는 “부동산 PF 시장의 유동성이 아직 경색된 상황에서, 실물 담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를 넘어 초대형 브리지론을 성사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부동산 PF와 레고랜드 사태란?부동산 PF란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자금 조달 방식이다. 시공사(건설사)의 보증으로 금융사에서 자금을 대여해 시행사(부동산 개발 업체)가 땅을 사는 게 일반적인 부동산 PF 방식이다. 보통 브리지론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뒤 본PF 단계에서 공사비를 포함한 전체 사업비를 빌린다. 시공사는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본PF 전 브리지론 단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울산 주상복합 건설 시공사로 참여했던 대우건설이 올해 2월 연대보증을 섰던 후순위 브리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며 시공권을 반납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레고랜드 사태란 지난해 9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춘천 레고랜드를 개발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그 후폭풍으로 우리나라의 채권 신용도가 동반 급락한 사건이다. 대출금 2050억원 중 412억원을 자체 상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강원도가 보증을 선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됐으며 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지난해 9월 26일에는 국고채 금리가 4.548%까지 치솟으며 2009년 10월 26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도 사업비 조달을 위한 부동산 PF 7000억원 차환 발행에 실패할 뻔했다. 결국 정부와 한국은행, 5대 금융지주가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며 급한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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