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전북 순창 양조장 (유)친구들의술 임숙주 대표] “고추장만큼 순창 지란지교 술도 유명해요”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3. 7. 1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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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술 전통주 ‘지란지교’. 사진 친구들의술

우리에겐 고추장으로 잘 알려진 전북 순창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순창에서 생산되는 원재료를 활용해 빚은 고급 전통주 ‘지란지교’가 그 주인공이다. 발효와 숙성을 합해 100일 동안 빚은 후에, 90일간의 추가 숙성을 거쳐 완성되는 지란지교는 은은한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대표적 전통주 대회의 하나인 대한민국명주대상 2016년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을 정도로 품질은 진작에 인정받은 술이다. 그뿐 아니다. 순창군에서 고향사랑기부제(개인이 고향에 기부하면 답례품과 세액공제를 받는 제도로, 답례품은 기부 금액의 30% 수준이다) 답례품으로 지란지교 술을 선정했을 정도로 이미 순창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임숙주 친구들의술 대표가 자사 전통주 ‘지란지교’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란지교 소주, 지란지교 약주, 지란지교 탁주,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 사진 박순욱 기자

지란지교 술은 순창으로 귀농한 임숙주, 김수산나 부부가 마음과 정성을 다해 빚은 고급 전통주다. 지하 791m 천연암반수, 품질 좋은 순창의 멥쌀과 찹쌀, 예로부터 평양의 술도가에서도 가져다 썼다는 순창의 전통 누룩으로 술을 빚었다.

지란지교 술은 탁주, 약주 구분 없이 단맛과 신맛, 쓴맛, 떫은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술로 유명하다. 첫 모금에는 쌀의 단맛이 느껴지다가 바로 이어 누룩의 산미(신맛) 그리고 알코올의 쓴맛이 뒤따른다. 멜론, 사과 향이 느껴지는데 특히, 농익은 사과 향을 얘기하는 이가 많다.

지란지교 술을 만드는 농업회사법인 친구들의술 임숙주 대표가 양조장을 찾아간 기자를 처음 안내한 곳은 발효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술항아리들이 죄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질 않은가. 임숙주 대표가 겸연쩍게 웃으며 하는 말이 이웃집 아저씨같이 푸근하다. “사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공간입니다. 소위 과학 하신 분들은 ‘제발 이것(발효 중인 술항아리를 이불로 감싸는 것) 좀 치워라’고들 하지요. 술 발효는 온도 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깥 공기가 오가니, 온도에 예민한 술 속의 미생물 활동에 좋을 리 없지요. 온도 변화를 주지 않으려고 이불로 감싸는 건데, 보기는 좀 그렇죠. 허허.”

이곳 발효실 온도는 24~27도 안팎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지란지교 술은 이양주다. 멥쌀 죽으로 밑술을 만들고,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쓴다. 그래서 발효는 7~10일 정도면 끝난다. 발효란 곡물의 전분이 당분으로, 다시 알코올로 바뀌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임 대표는 “발효가 끝났다는 것은 알코올이 만들어졌다는 것일 뿐, 사실 술의 향과 맛을 결정하는 것은 오랜 기간 저온에서 진행되는 숙성”이라고 말했다. 지란지교 술은 발효 10일, 숙성 90일을 거쳐 단맛과 신맛, 쓴맛, 떫은맛까지 조화를 이룬 술이 완성된다. 아니, 아직 미완성이다. 지란지교 양조장은 발효실, 숙성실 그다음에 보관실이 따로 있다. 100일 걸려 발효와 숙성을 거친 술들은 다시 영하 0도 안팎의 보관실에서 거의 80~100일을 더 보낸 후에야 술병에 담긴다.

지란지교의 근간이 되는 술은 순창 백일주다. ‘100일’이라는 긴 시간을 발효와 숙성에 보낼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빚어야 완성되는 술이 순창 백일주다. 그런데 지란지교는 한술 더 뜬다. 발효 10일을 포함해 100일 동안 숙성하고 나서도 곧바로 술병에 담지 않고 90~100일간 더 추가 숙성을 한 다음에야 병입한다. 다시 말해, 100일이 아닌 거의 200일이 걸리는 술이 지란지교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청출어람’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숙성에 공을 들이는 술이 지란지교다.

3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임숙주 대표가 고향인 순창에 귀농한 것은 2013년이다. 술을 빚으려고 귀농한 것이 아니라 무화과 과수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무화과를 재배하고 있고, 직접 키운 무화과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술이 2021년에 내놓은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다.

그에게 술 빚기는 우연이었다. 아니, 인연이었다. 술을 시작한 계기를 그의 육성으로 들어보자. “무화과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부부 마시려고 집에서 틈틈이 소량으로 술을 만들어봤어요. 어린 시절, 어머님이 명절 때 빚던 술이 생각나서죠.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술을 빚을 때 차가운 곳에 오래 둬야 한다’는 말씀은 기억나 발효가 끝난 술을 곧바로 마시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시켰습니다. 거의 석 달 동안 숙성한 다음에 술맛을 보니, 기가 막히게 좋지 뭡니까. 좋은 술은 나눠 마셔야 더 맛있죠. 그래서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맛을 보게 했더니, ‘이런 술은 대회에 출품시켜야 돼’라고 하길래 별생각 없이 응모했지요. 출품하려면 술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혀로 맛을 보고 가슴에 품자’는 뜻을 담아 ‘설주’라는 이름까지 붙였어요. 그 대회가 2016년 대한민국명주대상이었고, 그해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번듯한 양조장도 없이 집 부엌과 안방 아랫목을 오가며 빚은 술이 1등 상을 받았으니, 제가 가장 많이 놀랐어요.”

자신이 마시려고 가양주 스타일로 빚은 술로, 덜컥 2016년 대한민국명주대상 최고상을 받은 임 대표는 한 번 더 욕심을 낸다. ‘순창 고추장이 임금님께 진상됐듯이, 순창에서 내가 만든 술도 청와대에 한번 들어가봐야지’ 하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납품’은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가양주는 자격 미달이었다. 상업 양조장을 정식으로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청와대에서 술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임 대표는 부랴부랴 양조장 면허를 급하게 받았다. 농업회사법인 친구들의술 양조장은 임 대표의 청와대 납품 욕심으로 생겨난 셈이다. 그리고 양조장을 설립한 그해 2019년 12월에 지란지교 술은 마침내 청와대 행사 술로 들어갔다.

“베트남 국왕이 방한한 행사장에 지란지교 술이 제공됐어요. 비공식 행사여서 언론 보도는 없었어요. 하지만 ‘청와대 진상’이라는 소원은 풀었으니, 만족했어요.”

대한민국명주대상 대상, 청와대 납품이라는 두 가지 업적을 이룬 임숙주 대표는 이제 느긋해졌다. 상업 양조장을 차렸지만, 술을 많이 팔 욕심은 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주업은 무화과 과수원이었다. 그렇다고 술 빚기를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다. 지란지교 탁주, 약주, 소주까지 전통주 라인업을 구축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국내산 찹쌀, 멥쌀, 전통 밀누룩 등 최고 품질의 재료를 사용한 탓에 가격이 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 13도의 탁주가 1만5000원, 15도 약주는 3만원, 43도 소주는 무려 15만원이었다.

그런데 반전의 기회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임 대표의 부인 김수산나씨가 ‘대박 사고’를 친 것이다. 과수원에서 직접 기른 무화과로 만든 무화과청(무화과를 설탕에 버무린 것)과 레드비트(뿌리채소의 일종으로 레드비트 분말을 액체에 풀면 분홍빛이 난다)를 부재료로 넣은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처음에 저는 무화과 탁주 개발을 반대했어요. 지란지교 술은 탁주든 약주든 설탕 같은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거든요. 그런데 설탕이 들어간 무화과청을 넣은 무화과 탁주라니, 안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내가 ‘한시적으로라도 출시해 보자’고 우겨서 그냥 내버려 뒀더니, 2~3일 만에 무화과 탁주 1000병이 팔리지 뭡니까. 그때 아내 말 안 들었더라면, 양조장은 진작에 없어졌을 거예요.”

2021년에 세상에 나온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는 이제 양조장의 효자 상품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매출의 70%를 무화과 탁주 한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무화과 탁주 한 병에는 네 개 정도의 무화과 열매가 들어가 있어 한 모금만 들이켜도 무화과 향이 입안 전체를 맴돈다. 거기다 술 전체가 분홍빛까지 띠고 있어, 여성의 반응이 뜨겁다. 이제는 잘나가는 무화과 탁주 기세를 몰아, 지란지교 탁주, 약주 매출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다. 2022년 양조장 매출이 전년의 세 배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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