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마을 휩쓸어가”…산사태 덮친 경북 예천

유건연 2023. 7. 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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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쐐하는 바람소리와 돌풍 이후 순식간에 마을 휩쓸어가
급박한 가운데 구조 요청 도로 곳곳 유실로 구조 작업 발목
농작물 침수 과원 유실 등 농업 피해도 갈수록 커져
15일 새벽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백석리 상백마을. 집이 있던 곳은 큰 나무와 토사에 반쯤 파묻힌 농기계만 보인다.

“15일 새벽 4시 반쯤 3일 밤낮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내리던 비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방에 있는데 쐐~쐐~하는 굉음이 갑자기 들렸습니다. 남편을 깨워 급하게 밖으로 나갔더니 돌풍 같은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가더니 순식간에 바로 옆 이웃집들이 집채만 한 바위와 나무, 토사에 휩쓸려갔습니다.”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상백마을 김춘자씨(64)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 정신없이 119소방대에 구조를 요청했다. 16일 백석리노인회관 대피해 있던 김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눈앞이 아득하다”면서 몸서리쳤다. 그는 감정이 복받쳐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5일 새벽 산태로 5가구가 토사에 휩쓸리면서 4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실종됐다. 16일 오전 찾은 마을은 폭격 맞은 것처럼 처참했다. 마을은 토사와 돌덩이, 나무로 뒤덮였고, 집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반쯤 흙에 파묻혀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량과 농기계, 사과나무 만이 집이 있었던 곳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15일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 백석리 상백마을. 사과원이 밀려 내려온 토사로 완파됐다.

주민들의 주요 생계 수단이었던 사과원 일부는 토사와 지름 30㎝에 달하는 큰 나무에 쓸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사태 하루가 지난 이날에도 상백마을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은풍면에서 효자면으로 이어지는 927번 지방도 곳곳이 급류에 유실되면서 차량 통제가 이뤄졌다. 

주민들이 임시 대피한 백석리노인회관에서 상백마을까지 차량 진입이 안 돼 도보로 가파른 산길을 20분이나 가야 했다. 

마을로 이어진 산길 곳곳이 토사로 파이고 황토물이 무섭게 흘러내렸다. 접근이 어렵고 추가 붕괴 우려가 있어 구조 작업도 더뎠다. 하지만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 가운데서도 경찰과 119 소방대원 등은 필사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었다.

15일 새벽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백석리 상백마을에서 16일 소형굴착기를 이용한 응급 복구와 실종자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황보성 백석리 이장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면서 “응급 복구라도 빨리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천읍에서 상백마을로 이어지는 은풍면 일대도 물폭탄의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과원 4958㎡(1500평)가 산사태로 매몰된 이원희씨(77‧은풍면 은산1리)는 “1959년 사라호 태풍 이후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면서 “과원 전체가 토사에 휩쓸렸다. 도로가 막혀 응급 복구는 엄두도 못 낸다. 정말 답답하고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한숨지었다.

은산1리선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축사 한동이 완파됐고, 도로가 유실되면서 2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5일 새벽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처참한 모습. 뒷산에서 쏟아진 어마어마한 양의 토사와 나무, 돌덩이들이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다.

백석리에서 차로 30여분거리 감천면 벌방1리도 15일 새벽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와 바윗덩이, 나무들이 순식간에 휩쓸고 갔다. 농가 두채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논밭은 모래밭으로 변했다. 새벽 날벼락으로 2명이 실종됐다.

차를 높은 곳으로 옮기려다 간신히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진 한용훈씨(62)는 “차에서 나와 마을 주민들로부터 구조된 지 불과 2~3분 지났을 때 토사와 나무, 바윗덩이들이 순식간에 집을 덮쳤다”면서 절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집에 있던 한씨의 형수는 16일 오후 현재 실종 상태다. 

윤 모할머니는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아들과 함께 살던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온 창고, 트랙터, 차량까지 몽땅 토사에 휩쓸려 가버렸다. 살길이 막막하다.다”며 눈물을 흘렸다.

15일 새벽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처참한 모습. 뒷산에서 쏟아진 어머어마한 양의 토사와 나무, 돌덩이들이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다.

피해주민 유국진씨(73)는 “실종자 수색 등 응급 복구가 절실하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한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는 데 농산촌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항구적인 재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6일 오전 문경 호계면 막곡2리에선 수해 복구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50사단 120여단 장병 40여명이 투입돼 침수된 9가구에서 가재도구를 들어내고 마을 길을 긴급 복구하고 있었다. 막곡2리는 인근 영가천이 15일 범람 위기에 처하면서 10여 가구가 새벽에 마을회관으로 긴급 대피해 인명피해는 막았다. 

15일 새벽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사과원. 산에부터 마을을 거쳐 쏟아진 토사와 각종 유실물이 뒤덮인 사과원은 모래밭으로 변해 버렸다.

경북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3일부터 16일 오전까지 영주 306㎜, 문경 304.7㎜, 봉화 288.8㎜, 예천 242.9㎜, 상주 215㎜등 물폭탄 같은 극한 폭우로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9명이 실종됐고, 부상자도 17명으로 집계됐다. 

2개 마을 산사태와 급류 휩쓸림 등 예천에서만 사망 8명, 실종 9명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주와 봉화에서도 산사태로 각각 4명이, 문경에선 2명 사망했다.

농작물과 농경지 등 농업 피해는 침수, 낙과, 과원 유실 등 16일 오후 현재 1562㏊(잠정집계)에 이른다. 가축 폐사도 6만마리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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