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노벽 전 주러시아 한국대사 | 반란 이후 러시아 미래는…조속한 전쟁 종식? 다른 반란?

박노벽 전 주러시아 한국대사 2023. 7. 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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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그룹이 6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남부 군관구 본부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2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 사진 AFP연합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용병부대, 바그너그룹이 6월 23일, 24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에서 벌인 군사 반란은 23년간 통치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에 최대 위기를 조성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총괄하는 러시아 남부사령부를 장악하고 모스크바를 향해 단숨에 진군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1917년 폭력과 무질서의 역사 경험을 상기시키며 반란 진압을 약속했다. 반란군은 러시아 정규군의 헬기를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면서 모스크바 인근까지 800㎞를 신속히 이동했다.

푸틴과 안보 기관은 6월 24일 저녁 유혈 사태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중재 모양새를 취하게 했다.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에 대한 정치적 사면과 프리고진의 벨라루스 이동을 허용하도록 타협함으로써, 반란부대를 회군시킬 수 있었다. 푸틴은 자신에게 충성해 온 용병의 반란을 사전에 제압하지 못함으로써 정치 리더십에 심각한 균열을 드러냈다. 앞으로 반란 여파를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푸틴 체제와 러시아의 장래와 직결돼 있다.

박노벽 전 주러시아 한국대사서울대 외교학,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역사학 박사, 현 한러교류협회 이사, 전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

프리고진의 바그너그룹이 반란 시위를 단행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프리고진은 푸틴의 후광과 정부 재원(지난해 30억달러) 지원으로 바그너 회사와 초법적인 용병부대를 급성장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작년 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 정규군의 실패와 후퇴를 보완하기 위해 바그너그룹이 본격적으로 투입됐고, 올해 5월 바흐무트 전투에서 성과를 올리면서 푸틴의 군사 작전 성과를 홍보할 수 있게 해줬다. 수장 프리고진은 자신의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수천 명 범죄 수감자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사면을 인센티브로 수감자들을 용병 그룹에 동참시켜 규모를 확장했다.

그러나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전선에서 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프리고진과 국방 수뇌부 간 내부 반목은 적대감으로까지 악화됐다. 작전 방식과 주도권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났고, 병참 지원 부족, 다수 전사자 발생 등과 관련한 내부 총질도 발생했다. 국방 수뇌부는 프리고진의 무도한 요구에 반감이 컸고, 프리고진은 국방 수뇌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러시아군 일부에서도 분열과 방관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바그너그룹에 대한 지휘권을 프리고진으로부터 박탈하는 국방부 지침이 나오자, 프리고진과 추종 부대원들이 이에 불복하면서 반란의 도화선이 됐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 크렘린은 바그너그룹의 개인 관리 체계를 바꿔 공식적인 정부 통제 아래에 두고 프리고진을 철저히 배제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푸틴은 이번 사태 책임자에 대한 면책은 약속했지만, 군대에 관해서는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항공우주군 총사령관 등을 조사해 동조자로 처벌할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지휘관들에 대한 충성도를 검열해 다른 반란 여지를 없애려 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비판을 받아온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을 전쟁 총괄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임무를 개편 중이다.

전쟁에 대한 영향과 나토의 입장

반란 사태는 초기에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를 초래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하루 반 만에 유혈 사태 없이 그침으로써 전쟁에 대한 영향은 일시적이고 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은 6월 초 개시한 반격작전에서 돌파구를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서방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더디지만 일부 지역을 탈환해 나가고 있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반란 사태가 러시아 국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러시아 내부의 취약성과 타협 가능성을 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결의를 다졌다. 즉, 러시아의 내부 취약성으로 인해 더이상 전쟁에서 ‘시간은 러시아 편’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파악했다. 또한 푸틴 체제가 확실한 위협 앞에서 오히려 타협할 가능성이 있음을 간파하고 그간 우크라이나가 주장해온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즉, 유럽연합(EU)은 35억유로(약 5조113억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추가로 결정했고, 미국도 5억달러(약 6563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7월 11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재정적 장기 지원 협정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이번 반란 사태는 여파가 지정학적 변동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그 기간이 짧아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반란 사태 기간 중 러시아의 루블화는 달러 대비 약세를 지속했으나(달러당 87루블까지 하락) 주요 수출품인 원유, 가스의 생산 차질을 가져오지 않아서 가격 상승이나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크렘린이 반란으로 인해 국내 안정을 우선시할 경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조기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쟁 기간의 단축 가능성을 내다본 투자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방산 회사 주가를 다소 하락시켰다. 또한 서방의 제재로 압류된 러시아 자산을 두고 전쟁 종식 시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으로 충당할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제재 해제는 교섭 대상이므로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정상화하는 시기를 예상하기는 아직 이르다. 러시아가 서구와 공존의 국제 질서에 동참해 협력을 재개하는 시기가 다시 돌아올지는 최소한 러시아 정치 노선의 변화나 전쟁의 종식 여하에 달려 있다. 프리고진의 반란이 예기치 않게 그런 여건을 조성했는지는 경과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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