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꿈꾸며 왕성하게 활동한 실천적 혁명가”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 신승철(1971-2023)이 지난 7월2일 52살 생일을 2주 앞두고 영면에 들었다. 그의 사인은 폐동맥혈전색전증으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그렇게 그는 살아생전 늘 그가 되고자 했던 ‘하나의 생명’(une vie)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떤 존재를 가리키지 않는 활동(이 되어)… 살아 활동하는 이런저런 주체가 가로지르는 모든 순간 속에, 체험되는 이런저런 대상들이 헤아리는 모든 순간 속에 존재한다.’(질 들뢰즈 <내재성: 하나의 생명>) 누군가 그가 대중들에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은 특정할 수 없는 존재, 분자적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으리라. 그는 세계 내 모든 존재를 향해 자기의 몸과 정신을 흩뿌리는 우주적 공생체, 되기와 이행을 통한 어떤 삶이 되고자 했다.
논문‧시론 30여편과 책 40여권 저술
열정적 저자·철학자이자 실천가
대학생 때 도시빈민·노학연대 지원
카피레프트 일환 ‘노동자의 책’ 설립
계급→대중→소수자로 철학적 변신
성장주의 기반 탄소자본주의 맞서
새로운 형태의 생태혁명에 전념
고 신승철은 들뢰즈‧가타리, 스피노자, 마르크스, 네그리,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니콜라 부리오, 그레고리 베이트슨, 머레이 북친 등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면서 30여편의 논문‧시론‧논설과 40여권의 책을 저술한 열정적인 저자이자 철학자였으며, 지난 35년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왕성하게 활동한 실천적 혁명가였다. 그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을 관통했던 것은 어린 시절 겪었던 광주에서의 항쟁이었다. 그는 특히 군부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끝까지 도청에 남아 목숨을 바쳤던 학생과 시민군의 자치적 코뮨(공동체)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맑스철학연구회’를 통해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였을 것이다.
그는 1990년대 동안 동국대 학생운동 활동가들을 이론적으로 이끌며 그들의 노학연대와 도시빈민연대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노동해방의 혁명가였지만 또한 어떤 변신을 이뤄내고자 했다. 자본의 전지구화에 맞서는 국제적 연대가 활성화되는 시기에 발맞춰 그는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혁명을 급진적인 정치·사회적 변화로 전이시키려는 활동을 벌였다. 전자통신의 등장과 함께 출현한 국제연대(대표적으로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를 긍정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주체성을 더욱 급진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2000년대 초반 카피레프트(지식 공유) 운동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책’을 설립했던 것은 바로 이 흐름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시 2000년대 중반까지 그는 그동안 공부해왔던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을 정리 및 소개하면서 욕망해방을 위해 애쓰는 분자혁명의 이론가로 변신했다. 한편으로 산업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및 국제적 연대투쟁을 지지하면서도 또한 여성, 장애인, 퀴어,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운동에 주목해 그것을 이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이후 그를 생태운동과 초록정치에 헌신하면서 동물해방, 개발주의 반대, 공생적 섭생을 추구하는 방향과 결합시키게 했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자본 및 사회구성형태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의 저항은 성장주의에 기반한 탄소자본주의와, 인간의 마음과 교류형태를 포섭하는 정동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현재까지 그에 맞서는 사회기획인 ‘탈성장 전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로운 형태의 생태혁명인 ‘떡갈나무의 혁명’을 만들어내는 데 전념해왔다. 계급(학생운동과 노학연대)에서 대중(사이버 맑스와 ‘노동자의 책’ 활동)을 거쳐, 소수자와 다중(욕망해방과 분자혁명) 그리고 생명과 생태의 복잡계(떡갈나무 혁명과 돌봄 문화에 기초한 탈성장 전환)로 확장되는그의 철학‧실천적 변신의 과정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지배권력에 맞서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과 해방적 주체성’을 구성하고자 했던 그의 헌신에 있을 것이다. 그는 투쟁하면서 사랑하기, 걸으면서 묻기, 돌보면서 함께하기를 실천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두에게 혁명적으로 살아갈 것(<모두의 혁명법>)을 우리에게 제안하고자 했다. 문래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저항적‧실험적 예술가들, 사회학과 정치학의 연구자들, 교육과 복지를 낮은 곳에서 실천하는 교육자들 및 사회복지사들, 아픔을 치유하고 돌봄 문화와 희망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종교인들과 교류해왔던 그의 삶의 여정은 오늘날 ‘생태적지혜연구소’로 체현되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미소, 가난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그의 음성을, 아래로부터의 역동적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내자는 그의 발걸음을 기억합시다. 여성되기에서 동물되기를 거쳐 분자되기 지각불가능하게-되기에 이르는 하나의 생명의 흐름을 말이죠.
이승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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