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식물인간 남편 대신 아내가 처벌 불원 의사 표시 못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사건에서, 식물인간이 돼 의사 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대리한 성년후견인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7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고등학생이던 2018년 11월 자전거를 타던 중 앞에 가던 60대 보행자 B씨를 들이받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이 사고로 뇌를 다쳐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됐고, 법원은 B씨 아내를 성년후견인으로 선임했다. 성년후견인은 장애나 질병, 고령 등 상황에 처한 성인의 재산 관리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법적으로 정해 놓은 제도다.
B씨 아내는 성년후견인 자격으로 A씨와 합의해 합의금을 받고, 법원에 A씨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달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 측이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법원은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A씨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신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 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며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돼 있거나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따른 것이어야 하는데,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 의사 표시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와 일치하는지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만,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 의사를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할 수는 있다”고 했다.
한편, 박정화·민유숙·이동원·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반의사불벌죄에 관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남겼다. 형사소송법에 성년후견인의 대리를 허용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지만 이를 금지하는 규정도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 의사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만 가능하고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밝힌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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