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기상의 시대] 집중호우에 산이 무너진다

송복규 기자 2023. 7. 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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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강우 많았던 집중호우… 함수량 늘어나 산사태
퇴적층 많은 경북, 산사태 피해 잇따라
인위적 산지 활동도 원인… “자연 산사태만 고려해선 안돼”
지난 16일 오전 경북 예천군 백석리 산사태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가 발견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연일 이어지는 폭우로 대규모 산사태가 마을이나 도로를 덮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퇴적물로 이뤄져 지반이 약한 경북 지역은 대규모 산사태로 심각한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산사태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덮칠 수 있는 만큼 징후를 살피고 제때 대피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17일 오전 11시 기준 40명이다.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경북 지역으로 19명이 사망했고, 8명이 실종됐다. 경북 예천군과 영주시, 봉화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북 지역의 피해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산사태다. 집중호우로 최대 400㎜의 많은 비가 내리면서 토사물이 경북 예천군 효자면에서 마을을 덮쳤다. 소방당국이 구조에 나서고 있지만, 토사물의 양이 많아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 산사태는 토양의 함수량이 100%에 달하면 발생한다. 쉽게 말하면 토양은 흙과 공기로 비어있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집중호우로 이 빈 공간에 물이 가득 차는 것이다. 함수량이 높아질수록 물체가 구조적으로 파괴되지 않는 응력값인 전단 강도가 약해지고 토양이 흘러내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

산사태는 암석이 응집력을 상실한 절리가 발달할수록, 물이 집중되기 쉬운 계곡 지형일수록 일어나기 쉽다. 또 점토질의 흙으로 토양이 구성된 경우 물을 계속 머금고 있는 특성 때문에 모래로 된 땅보다 산사태가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다. 퇴적층이 발달한 지형은 산사태로 토양이 물과 세차게 밀려 곤죽처럼 떠내려가는 현상인 토석류가 나타나 피해가 클 수 있다.

특히 경북 지역은 퇴적층으로 지반이 형성된 탓에 산사태에 더 취약하다. 김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관리통합클러스터장은 “호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분지는 지질시대에 주변 산에서 흘러오는 퇴적물들이 층층이 쌓여 형성된 지역”이라며 “퇴적층 사이 경계면에 물이 쉽게 침투하고 풍화 작용에도 쉽게 변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장마로 선행강우가 많았던 것도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반도 상공에 거대한 수증기가 지나는 통로, 이른바 ‘대기의 강’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토양이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넘친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중부지방 강수량은 424.1㎜로, 평년 장마철 전체 강수량(378.3㎜)을 훌쩍 뛰어넘었다.

김민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사태연구센터장은 “한국의 산사태는 주로 집중호우로 발생하는데, 평년 대비 올해 선행강우 일수가 많았고 강우 강도도 굉장히 높았다”며 “기반암에 있던 물이 지표로 흘러나오면서 토양의 마찰력이 감소해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오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집중호우 피해지역에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7시30분쯤 인근 산에서 쏟아진 토사가 주택을 덮쳐 주민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뉴스1

산에서 이뤄지는 인위적인 생산 활동이 흙을 교란해 지반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산지를 평지로 만들고 숲을 없애면서 같은 양의 비가 와도 전부 토양으로 흡수되고 산지가 교란돼 약해지고 있다”며 “자연 산사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산사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전 교수는 산사태 위험지역에 대한 관리 체계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에서는 숲의 모습과 사면 경사, 사면 길이, 토심 등을 고려해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정하고 있는데, 인위적인 산사태가 반영되지 않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사태로 인명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도 딱 한 곳만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됐다.

이 전 교수는 “산사태 예측 시스템으로는 안전한 곳으로 집계돼도 개발이 진행된 곳은 산사태 위험이 높은 곳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며 “지형이나 경사 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공사 관계자나 주민들이 산사태 예측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중호우가 일어나는 시기에 산사태를 피하기 위해선 계곡 부근이나 경사면을 타고 흐르는 지표수의 양이 눈에 띄게 많지 않은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건조하거나 습하지 않던 지역에 물이 솟아나는 경우도 산사태 징후로 봐야 한다. 이외에도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무가 흔들리거나 내려앉을 때, 포장도로·인도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를 때, 전신주·옹벽이 기울어지는 경우도 산사태를 의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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