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증권, 무더기 신용등급 '경고등'
등급 하향 조정이 더 많아
경기회복 지연·부동산 부실
하반기도 부정적 전망 지속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발행사)들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하락한 비율이 높은 가운데 하반기에도 내릴 가능성이 커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기업 신용등급은 자금 조달과 직결되는데, 현재의 고금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하락한 신용등급이 하반기 재무활동에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7일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의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변동 현황에 따르면 하락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신용평가는 회사채 장기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509개사 중 하향 조정된 곳이 11개사로 상향 조정(7개)보다 많았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장기 등급이 하락한 곳이 15개사로, 상승 기업(5개)보다 많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상승(12개)과 하락(11개) 비중이 유사했다.
정승재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올해 상반기 경기 둔화와 부동산 위험 확대, 금융환경 악화로 신용등급 변동이 뚜렷한 하향 기조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업 신용등급 추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신용등급 상하향비율(상향 기업 수를 하향 기업으로 나눈 값·1보다 크면 상향 기업이 하향 기업보다 많다는 뜻)은 지난해를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나이스신용평가 신용등급 상하향비율은 2019년 0.53배, 2020년 0.47배, 2021년 0.64배, 2022년 1.65배, 2023년 상반기 1.09배다.
우려되는 점은 전망이 밝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향후 신용등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등급전망(긍정적·안정적·부정적)은 6월 말 기준 부정적 전망이 35개사로 긍정적 전망(16개사)보다 배가량 많다. 지난해 말 등급 전망 상황(긍정적 11개사·부정적 26개사)과 비교하면 부정 전망이 더 많이 늘었다. 김동혁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올해 상반기에 신용등급이 하락 우위로 전환됐는데 등급전망 부여 현황도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여전히 높은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업종 중에서 석유화학·건설·디스플레이·금융 업종의 전망을 어둡게 봤다.
서찬용 나이스신용평가 평가정책실장은 "통화 긴축 기조가 단기간 내 완화되기 어려운 거시 환경에 신규 사업장 착공 지연과 미분양 위험 증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와 운전자금 부담이 증가하며 건설업에 비우호적인 산업 환경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석유화학산업은 수급 불균형에 경기 회복 지연으로 수익성이 저조한 가운데 투자 집행에 따른 재무 부담 증가가 신용등급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조선·항공, 기계·방산, 음식료, 의류 등 일부 업종의 등급 전망이 나아졌으나 지난해 말과 같이 6월 말 기준으로 우호적 사업 환경에 있는 업종은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금융업종에 대한 우려가 컸다. 노재웅 한국신용평가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실장은 "6월 말 기준 등급 전망 부정적·하향 검토가 6건으로 '긍정적·상향 검토(4건)'보다 우세하다"며 "부동산 PF, 해외 대체투자 위험, 가계부채 등 불리한 금융 환경을 고려할 때 추가적으로 신용도 하락 압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에 만기가 다가오는 대규모 브리지론, 미국·유럽 등 상업용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국내 금융사의 투자 손실 우려, 고금리 지속에 따른 금융사의 손실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비은행 금융사(증권·카드·캐피털·저축은행) 신용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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