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울버린이었던 휴 잭맨의 연기 변신을 마주하다 [TEN피플]
[텐아시아=이하늘 기자]야수와 같은 날렵하고 강인한 외모에 손등의 피부를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클로를 착용하는 캐릭터.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상징적인 인물 울버린은 배우 휴 잭맨의 뒤에 따라오는 대표 명사인지도 모른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제외한 모든 엑스맨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으며, 바로 회복되는 초재생능력과 불멸을 지닌 캐릭터다.
휴 잭맨은 영화 '로건'(2017/감독 제임스 맨골드)를 마지막으로 울버린 실사영화 시리즈의 막을 닫았다. '로건'이라는 명칭은 울버린과 같은 의미지만, 슈퍼히어로로서 울버린이 아닌 인간 로건에 집중하기 때문. 휴 잭맨 역시 그간 자신을 상징하던 울버린이 아닌 다른 역할로 도약할 준비를 끝마치고 이후 다양한 연기 변신을 보여줬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더 썬'에서 휴 잭맨은 무엇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남자 '피터'를 연기한다. 영화는 피터(휴 잭맨)가 삶이 버거운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을 다시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더 파더'(2021)에 이은 가족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다.
안소니 홉킨스와 올리비아 콜맨 주연의 영화 '더 파더'가 치매 걸린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세심하게 포착하며, 돌보는 대상이 아닌 돌봄을 당하는 대상의 공포를 주목했다면 '더 썬'은 제목에서처럼 아들에 초점을 맞춘다. '더 파더'는 치매를 구현하는 방식이 지닌 차별점과 충돌하는 시퀀스가 만들어낸 두려움으로 인해 관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휴 잭맨은 '더 썬'을 통해 아들의 내면을 파악하지 못해서 자꾸만 어긋나는 평범한 아버지로 분했다. 소통이 되지 않아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바깥을 맴도는 휴 잭맨은 답답하지만 애써 아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강렬하고 센 역할들을 주로 맡았던 휴 잭맨이었지만, 이번에는 일상의 평범함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차이를 표현해냈다. 그동안 떨어져 지내 멀어졌던 아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때마다 어긋나는 상황들은 극의 재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영원한 울버린이었던 휴 잭맨은 그동안 어떤 캐릭터로 관객들을 찾았을까?
영화 '엑스맨' 시리즈(17년 동안 울버린/로건을 연기한 휴 잭맨)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휴 잭맨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바로 엑스맨 시리즈다. 엑스맨에서 울버린 캐릭터는 휴 잭맨을 대표하는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라고. 물론 '로건'을 마지막으로 울버린에서 은퇴했지만, 그만큼 휴 잭맨의 울버린은 하나의 각인된 이미지로 남아있다. 2000년 영화 '엑스맨'(감독 브라이언 싱어)에서 처음 울버린을 연기한 휴 잭맨은 이후 '엑스맨2-엑스 투'(2003), '엑스맨-최후의 전쟁'(2006), '엑스맨:퍼스트 클래스'(2011), '더 울버린'(2013),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엑스맨:아포칼립스'(2016), '로건'(2017)에 이르기까지 1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로건/울버린으로 등장했다.
휴 잭맨의 울버린이 가진 상징은 전혀 야수 같지 않은 단정한 외모가 야수와 같은 야성미를 뽐낸다는 반전 매력에 있다. 캐스팅 비화를 살펴보면,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사실 러셀 크로우가 1순위로 캐스팅될 뻔했지만, 그가 '글래디에이터'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때문에 휴 잭맨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탈락했다. 배우 더그레이 스콧이 순위에 올랐지만, 그 역시 '미션 임파서블 2'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일정이 조율되지 않자 결국 울버린 역은 휴 잭맨에게 돌아갔다는 일화다. 만약 러셀 크로우와 더그레이 스콧의 일정이 가능했다면, 휴 잭맨의 울버린은 세상 밖으로 공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러셀 크로우와 만나니 신기한 인연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은 17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했다. 2024년 개봉하는 '데드풀 3'에 울버린 역으로 복귀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 감독 톰 후퍼 / 장발장 역
1862년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 역을 맡았다. 정리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눈앞에 있는 음식을 마구 입 안에 넣는 이물질이 낀 손톱. 19세기 프랑스 거리에 있었을 작중의 실제 인물 장발장은 휴 잭맨의 외모로 고스란히 재현됐다. 이전에 리암 니슨이 출연했던 1998년 작 '레미제라블'(감독 빌 오거스트)의 장발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리암 니슨의 장발장이 중후하고 강인한 매력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면, 휴 잭맨의 장발장은 연약하고 불안정한 심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몰입감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그동안 울버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발장 그 자체로 변신했다. 장발장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전과자라는 신분 탓에 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인물. 그 때문에 신부의 도움을 받아 마들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희망도 잠시 장발장의 존재를 눈치챈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우)로 인해 다시 체포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휴 잭맨은 장발장과 마들렌이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표현함과 동시에 19년의 세월을 진짜로 지나온 듯한 성숙함으로 스크린 앞에 선다.
영화 '프리즈너스'(2013) 감독 드니 빌뇌브 / 켈러 도버 역
영화 '듄'(2021),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컨택트'(2016) 등 새롭게 창조한 세계 안에서 공감할만한 서사를 그려내는 감독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2013)에서 휴 잭맨은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추격자로 켈리 도버 역으로 완벽 변신한다. 영화는 켈리 도너의 부부와 절친한 부부가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지루해하던 각자의 딸 어린 애나와 조이가 낡은 캠핑카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보이면서 시작된다. 애나와 조이는 거리를 나섰다가 갑작스레 실종되고 이에 부모들은 폭우를 맞아가며 찾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평범한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는 '프리즈너스'는 절실하기에 더 고통스러움이 느껴진다. 휴 잭맨이 맡은 켈러 도버는 초반부에는 보통의 아버지처럼 그려지지만, 후반부에 도달할수록 점차 딸을 향한 집념이 강한 강렬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사건을 파헤치는 로키 형사 역의 제이크 질렌할과 맞먹는 치밀하고 꾸준하게 사건 안에 침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휴 잭맨. 아이들이 실종되던 당시, 집 주위에 있던 캠핑카 안의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설정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결국 풀려난 상황. 법의 테두리에서 합법적인 절차로 할 수 없는 수사는 켈리 도버에 의해 이뤄진다. 딸의 유괴 사건 앞에서 객관적인 지표와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휴 잭맨의 연기는 그게 불가능한 부모의 마음을 애써 눌러놓는 몇몇 장면들로 인해 더욱 슬퍼지는 작품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2017) 감독 마이클 그레이시 / P.T. 바넘 역
'위대한 쇼맨'(2017)에서 휴 잭맨은 이전까지 보여준 적 없었던 캐릭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중독성 있는 OST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근대적 서커스의 창시자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다. 테일러 바넘 역의 휴 잭맨은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지상 최대의 쇼를 주최하는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줬던 세상을 향해 분노와 희망을 토해내는 목소리와 달리 '위대한 쇼맨'에서는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실존 인물을 표현하면서 특징들을 최대한 살린 휴 잭맨은 서커스 공연을 소재로 하는 영화인만큼 음악과 춤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레미제라블'에서도 보여줬던 노래 실력이 '위대한 쇼맨'에서도 빛을 발한다. 애초에 전기 영화로 기획했었지만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감독의 강력한 주장으로 완성됐다는 비화도 존재한다. 'This ls Me'는 영화의 대표적인 노래이자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곡이다. 이 작품은 울버린 캐릭터를 은퇴한 휴 잭맨의 첫 영화 복귀작으로 완벽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휴 잭맨은 '데드풀 3'의 울버린으로 2024년 돌아온다)
배우에게 이미 익숙하고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시리즈물의 경우, 기존의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로 교체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는 한다. 하지만 휴 잭맨은 울버린/로건을 17년간 아니 그 이상을 연기하면서 어쩌면 자신의 상징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역할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꾸준하게 성실히 연기 변신하는 배우 휴 잭맨의 영화 '더 썬'이 기대되는 이유다. 평범하지만 공감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 휴 잭맨의 모습은 어떨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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