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불만 쌓여" 벼랑끝 K원격의료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7. 17. 17: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이 계도기간에 돌입한 후 한 달여 만에 급격히 위축된 것은 초기에 제기된 여러 불편함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재진 여부를 환자 본인이 입증하고 의료기관이 관련 서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일부터 처방 약을 받기 위해 환자가 약국에 직접 가야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8월 계도기간 종료와 함께 비대면 진료 산업 자체가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7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운영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불편센터'에 접수된 의견은 지난 16일 기준 약 900건에 달한다. 가장 큰 불만 사항은 초·재진을 가르는 데서 오는 번거로움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는 30일 내 동일 질병코드로 동일 병원에 방문했다는 서류를 미리 마련해 플랫폼에 업로드하거나 영상통화 시 직접 들고 증명해야 한다. 이 자체도 불편한 데다 해당 서류의 진위 여부를 의료기관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난관이다.

많은 병·의원들은 이런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환자들의 진료 요청 자체를 거절하고 있다. 전남 소재 내과 전문의는 "진료 요청이 종종 오지만 재진인지 100% 구분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취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예외적 초진 허용에 해당하는 환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중 거동불편자나 장애인, 섬벽지 거주자 등은 초진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해당 자료를 제출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까다로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충청도에 거주하는 40대 여성은 "장애가 있는 아이인데 소아과 3곳에서 등록증을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접수를 취소했다"며 "정부가 개선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재진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계도기간 3개월 중 절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작 시점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또 심평원에서 환자의 재진 여부를 알려면 각 병·의원이 의무기록을 매일 서버에 등록해야 하는데 현재 일 단위로 행정처리하는 의료기관이 없다는 점 또한 문제로 꼽힌다. 의료계 관계자는 "번거로운 작업이라 보통 월 혹은 분기 단위로 몰아서 환자 기록을 심평원에 넘긴다"며 "만약 정부가 일 단위로 처리하도록 강제하면 의료기관은 주저 없이 비대면 진료 포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진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이달 야간·공휴일 진료 건수는 지난 5월 대비 37.5% 감소했다.

소아 환자의 의료 공백 문제도 심각하다.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절반에 가까운 소아 환자들이 진료를 거절당했다. 특히 야간에는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려도 의사와 상담만 가능할 뿐 해열제를 처방받을 순 없는데 이런 점이 보호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경남 소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밤에 처방이 안 된다는 데 대해 보호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심적으로 고단해 야간 진료를 접었다"고 말했다.

약 배송도 대표적인 불만 사항으로 꼽힌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은 "비대면 진료 후 근처 약국 10곳에 처방전을 보냈더니 '해당 성분이 없다'며 모두 조제를 거부했다"면서 "먼 곳에 있는 약국에까지 전화해 약을 지어달라고 읍소해야 했는데 이런 불합리를 왜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국내 비대면 진료의 명맥이 남은 계도기간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희진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