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반격에 우크라 '푸틴 자존심' 크림대교 때렸나
흑해곡물협정 만료 앞두고 발생…전쟁판도 미칠 영향 촉각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크림대교가 또다시 공격받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의 통행이 17일(현지시간) 긴급 중단됐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크림대교가 폭발로 파손됐으며 최소 2명이 숨지고 어린이 1명이 다쳤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는 우크라이나가 수중 드론으로 크림대교를 공격했다면서 이번 공격을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에 의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도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과 해군이 이번 공격의 배후에 있다고 보도했으나 우크라이나 당국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크림대교 폭발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본격화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크림대교에서는 지난해 10월에도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한때 통행이 중단됐다가 올해 2월 차량용 교량이 복구된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파괴 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수개월 뒤에야 간접적으로 이를 시인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남서부에 위치한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지역으로 푸틴 대통령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와 크림반도 케르치를 연결해 '케르치 다리'로도 불리는 크림대교는 길이가 19㎞에 달하는 유럽 최장 교량이다.
2018년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건설 재벌 아르카디 로텐베르그 소유 회사가 크림대교를 완공했을 푸틴 대통령은 직접 트럭을 몰고 이 다리를 건너 개통식에 참석하며 애정을 보였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황제들과 소련 지도자들도 꿈꿨지만 실현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며 크림대교 완공을 자랑스러워했다.
또 자신의 70세 생일 이튿날인 지난해 10월 8일 크림대교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자 그해 12월 직접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운전해 복구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올해 2월에야 완전히 복구된 크림대교의 통행이 다시 중단된 것만으로도 러시아는 전쟁에서 상당한 차질을 겪을 수 있다.
크림반도에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크림대교를 통해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 등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 군용품을 보급하고 있다.
그만큼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전략적·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의 조지 바로스 연구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크림대교가 심하게 손상되면 러시아는 보급선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인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가 가해지면서 러시아인들이 유럽 등으로 여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최근 몇 주간 휴가를 보내려는 러시아인들의 차량이 몰리면서 크림대교에서 수㎞ 교통 체증이 발생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탈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크림반도 없이 종전은 없다'며 전쟁에서 승리해 크림반도를 되찾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겨냥한 공격을 강화하는 정황도 있었다.
러시아군은 지난 9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향해 발사한 미사일 중 1기는 크림대교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지난달 말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을 받기도 했다.
로이터는 이번 사건이 전쟁 중에도 안정적인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 기한 만료(17일 자정)를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그 의미를 당장 명확히 알 수는 없다고 전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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