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차도 침수 가능성은 더 커질 텐데…‘기후변화 영향평가’하면 안전할까

강한들 기자 2023. 7. 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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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수색 중 수습한 실종자 시신 1구를 옮기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15일 지하차도가 침수돼 참사가 벌어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리 일대는 이미 ‘홍수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다만, 거기에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100년에 한 번 올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면’ 침수가 될 수 있는 구역이었다.

기후변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기상이변이 벌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을 예측한다. 이제는 기후변화영향평가를 정비해 개발사업을 할 때 ‘기후위기 적응’이라는 관점을 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환경부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을 보면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일어난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리 일대는 ‘홍수위험’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미호강 인근은 ‘100년 빈도’의 비가 내렸을 때, 총 10.67㎢가 침수될 수 있는 구역으로 분석됐다. 이 중 궁평 제2 지하차도가 있는 영역은 대부분 100년 빈도 비에 2~5m 정도 침수될 수 있는 구역으로 2015년 평가됐다. 2019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지하차도 운영을 시작할 때도 침수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긴 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극한 강우 현상’은 증가한다.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낸 최신 온실가스 시나리오(공통 사회 경제 경로,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4종에 따라 남한의 기후변화를 분석해 올해 초 ‘2022 남한 상세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를 보면 ‘극한 강수현상’이 증가하는 추세는 고탄소 시나리오(SSP5-8.5)에서 뚜렷하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현재 기후에 비해 21세기 전(2020~2040년), 중(2041~2060년), 후반기(2081~2100년)에 5일 최대 강수량이 각각 14%, 28%, 36% 증가한다.

홍수를 예측할 때 말하는 빈도 개념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한다. 기후변화까지 고려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10년에 한 번 갱신되는 100년 빈도 극한 강우량은 앞으로 계속 늘 가능성이 크다. 백경오 한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기후변화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비가 계속 오는데, 이런 데이터를 포함하여 확률분포로 빈도개념의 홍수량을 산출하면 같은 100년 빈도라도 홍수량이 늘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도시계획의 ‘효율’에 치중해 안전을 예측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개발 사업을 할 때 편의성만 강조돼 왔다”라며 “개발 계획을 ‘기후위기 적응’의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개발계획에 ‘기후변화’를 고려하는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지난해 9월부터 운영되는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다. 기후변화영향평가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할 때 그 사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과 기후변화로 개발사업이 받는 영향을 모두 평가해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을 유도하는 제도다. 에너지 개발, 도시 개발, 공항 건설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거나 기후위기에 취약한 10개 분야의 계획, 사업이 평가 대상이다.

평가서를 작성할 때는 기후변화 시나리오, 국가·지역단위의 적응계획 등을 고려해 홍수, 폭염 등 기후변화 적응 요인을 현재, 가까운 미래, 먼 미래로 구분해 분석한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저류지, 빗물펌프장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최적 적응방안’을 마련한다. 김지수 환경부 기후적응과장은 “기후변화영향평가서의 충실성이 빠졌거나 현저히 모자란 경우, 평가서에 보완 요청을 할 수 있다”라며 “홍수 위험 지역에 지하 차도가 있으면, 노선 변경, 지상화 등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건과 같은 ‘도로 건설’ 사업에는 기후변화영향평가가 올해 9월부터, 길이 12㎞가 넘는 ‘대규모 사업’에만 적용된다. 궁평 제2 지하차도가 포함된 도로는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영향평가’ 제도를 바라보는 관점도 문제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킬러규제’로 보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3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던 환경영향평가를 환경영향 정도에 따라 중점·간이 평가하도록 개선하고 누적된 평가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 소요 시간·비용을 줄이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영향평가는 기후위기 적응 관점에서 문제시될 수 있는 사업에 대책을 넣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수단”이라며 “새로운 규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후위기 시대의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제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홍수가 잦은 네덜란드는 2007년부터 ‘제방 보강’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강에 여유 주기(Room for the River)’ 정책을 펴왔다. 강이 흐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만드는 게 골자다. 농지를 매입해서 ‘범람원’을 복원하고, 제방을 더 뒤로 후퇴시키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자연기반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경기도 파주 문산읍 인근 장단반도는 홍수 예방을 위한 ‘저류지’로 쓰인다. 백 교수는 “홍수가 급격하게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투수층’이 부족한 것”이라며 “녹지를 확충하고 저류지를 만드는 등 ‘자연 기반 해법’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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