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처 간 엇박자가 ‘휴대폰깡’ 피해 양산
“요새 ‘대포폰’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아세요? 예전에는 알음알음 발품을 팔아서 어렵게 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포폰 시장 활성화의 이면에는 일명 ‘휴대폰깡’으로 불리는 휴대전화 내구제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 사기의 확산이 있다고 말했다. 명의도용 등으로 대포폰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업자에게 돈을 받고 팔아 대포폰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만 개통하면 당장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내구제대출이 늘고 있다. 문제는 이 이 과정에서 내구제대출 이용자가 동의하지 않은 소액결제 등이 이뤄지면서 애초에 받은 현금보다 몇 배나 많은 통신요금을 내야 하는 피해를 떠안는다. 당장 몇십만원을 받고 나중에 수백만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더 나아가 보이스피싱 등 대포폰과 연관된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럴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정부는 내구제대출 사기 피해가 커지자 대책을 내놓았다. “내구제대출도 불법사금융처럼 음지에서 이뤄지다 보니 사후에 단속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처럼 정부의 대책은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구제대출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포털사이트에서 내구제대출을 청소년 유해 단어로 지정해 검색이 불가능하게 하는 식이다. 또, 대출 중개 사이트에서 이용자의 전화번호를 대부업자에게 공개하지 않고 이용자가 정식 등록 대부업체를 골라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예방책은 내구제대출 수요자의 의지에만 의존하고 있다. 내구제대출을 이용하지 않으면 내구제대출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접근한 이 대책은 “내구제대출은 불법이고 위험한 것이니 이용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이용자의 선의에만 기댔다. 마약 수요자만 처벌한다고 마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수요자 중심의 대책이 내구제대출 사기 피해 예방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결국 내구제대출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공급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예방책이 함께 필요하다. 휴대전화 개통 회선 제한, 대포폰 개설에 대한 통신사의 내부통제 강화 등 제도적으로 내구제대출에 대한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구제대출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적 대출 제도를 통한 내구제대출 예방부터 내구제대출 이용 경로 차단, 채무조정제도 등을 통한 피해자 사후 구제까지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구제대출 영역이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있는 탓에 정부의 제도적인 대책 마련이 지지부진하다.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되고는 있으나, 부처 간 내구제대출에 대한 시각이 달라 협의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구제대출 관련 정부 부처 간 회의에서 한 부처가 ‘휴대전화 개통 가능 대수를 줄이면 내구제대출 공급 자체를 막을 수 있다’라는 의견을 내자 다른 부처에서 ‘소비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를 반대했다”라며 현실적으로 부처 간 대책 마련이 어렵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팔이 안으로 굽듯이 각 부처에서는 소속 산업의 영향 등을 고려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라며 “오죽했으면 한 부처에 권한을 다 넘기면 내구제대출 사기를 즉시 해결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할 정도다”라고 토로했다.
내구제대출에 대한 대책이 늦어질수록 피해는 오롯이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단속이 어렵다”라는 말 뒤에 숨어 정부 부처 간 계산기를 두드린 ‘수박 겉핥기식’의 예방책만을 내놓는다면 내구제대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부처 간 이견 조율이 어렵다는 이 순간에도 내구제대출 피해자는 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모든 정부 부처는 ‘원팀(One Team)’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는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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