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계엄령 내리자” 피해 책임론에 익명 앱에 뜬 공무원 항변
“나가 이 동네를 15년 넘게 살았는디. 산사태? 난 적이 없어.”
전남의 한 기초자치단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 A(34)씨는 최근 산사태 위험 지역을 찾아가 대피하라고 말했다가 주민들로부터 이런 답을 들었다.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쾌함을 드러내며 “무너질 것 같으면 알아서 도망갈 것이니 참견 말라” “공무원이 말하면 다 따라야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사고가 나면 담당자인 내 책임으로 돌아갈 게 분명한데, 예방을 위한 통제를 쉽게 따르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최근 전국에 수일간 쏟아진 폭우로 17일 현재까지 40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특히 13명의 사망자가 나온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때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청주시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운 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공무원 사회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고 직전 기관 간 불통 등 문제점이 드러나며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유구한 지적도 이어진다.
평소 이런 비판이 나올 때면 숨죽이고 두들겨 맞던 공무원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재난의 모든 책임을 공무원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일선에 투입돼 피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은 맞지만, 업무 현장에서는 이에 순순히 따르는 국민은 드물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현재 수준의 행정력으로 모든 재난을 예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무원의 이런 ‘항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주로 올라와 있다. 한 경찰청 직원은 “막을 수 있었다 타령ㅋㅋㅋ 그거 막을 수 있었으면 이 세계는 무릉도원이겠지”라며 “결과가 발생하고 나서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건 누가 못하나”라고 적었다. 이 댓글에 도합 285명이 반응했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당연히 공무원 책임” “한국에는 자연재해가 없고 인재만 있다” “자연재해는 해당 청 공무원에 의한 살인, 대한민국에 자연사는 없다” “통제하면 ‘네가 뭔데’, 사고 나면 ‘살려주세요’, 수습하면 ‘통제 왜 안했나’ 이게 국룰” 같은 자조도 있다.
재난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통제에 나섰다가 ‘민원 폭탄’을 경험했다는 공무원 하소연도 여럿이다. 한 공무원은 “비 너무 와서 등산로 폐쇄했다가 하루 종일 전화만 받았다. 비오는 데 꾸역꾸역 등산하겠다고 생난리, 오늘 현장 가보니까 금지 테이프 뜯겨져있고 다들 등산하더라”라고 썼다. 최근 수해 지역 근무에 투입됐다는 또 다른 경찰 공무원은 “도로 침수돼서 차 들어가봐야 소용없다고 막아도, 소리 지르면서 왜 막느냐며 들어가는 XX들이 태반”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욕할 거면 최소한 평소에 통제나 지시에 잘 협조를 하고 욕했으면” “(차라리) 비 많이 오면 계엄령을 내렸으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 공무원이 재난 대응 현장에 투입되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일반행정 계열로 입직한 전남의 한 8급 공무원은 “이번 폭우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평소 보던 업무가 아닌 재난 대응에 투입되는데, 솔직히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지만 업무 자체를 잘 모르고 임하게 된다”며 “긴급 상황시 내린 판단에 따른 책임이 오롯이 내몫으로 돌아오는 것도 무섭다”고 했다. “(순환 근무 탓에) 한 개인이 노 베이스 부서에 발령났고, 일을 파악해 전문성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전. 어느 날 본인 역량을 넘어서는 이벤트를 마주해 결과가 사망으로 이어졌을 때 이건 개인의 책임일까 시스템의 책임일까”라는 글도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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